(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차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룽샹궁우(용상공무)를 실현하는 것이 양국의 올바른 선택"이라며 두 나라 간 협력을 강조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와 중국은 적대국이 아닌 동반자며, 의견 차이보다 공감대가 훨씬 크다"고 화답했다. 아시아의 두 대국을 동양적 상징인 용(중국)과 코끼리(인도)에 비유한 '용상공무'(龍象共舞·용과 코끼리는 경쟁하지 말고 함께 춤을 춘다)라는 용어는 현대 중국과 인도 간의 갈등이 아닌 협력관계를 강조할 때 자주 쓰인다. 시 주석이 이 용어를 빌려 미·중 대결로 대표되는 현 국제정세에서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새삼 인정한 셈이다. 모디 총리는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하고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회담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SCO 정상회의를 마치고 가장 먼저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고 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인도가 중요한 협력 파트너임을 드러낸 것이다. 모디 총리는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조치에 우려를 표한다"며 미국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SCO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도 서명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고관세 조치 등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인도·러시아를 결속시켰다"고 논평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밀착 관계를 이어왔던 모디 총리의 이번 방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몫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50% 고관세를 부과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모디 총리는 미국 시장을 대체할만한 거대 시장을 지닌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과 전략 경쟁 중인 중국 입장에서도 이런 인도를 우군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다고 인도가 완전히 미국과 등을 진 것은 아니다. 모디 총리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중국이 군사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열병식 무대에 오르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인도 입장에서 중국이 여전히 국경을 접한 안보 위협 국가라는 점은 간과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안보 위협에 맞설 때 미국이 자기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한다는 분석이 많다. 모디 총리가 이번 방중에 앞서 지난달 30일 일본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한 것 역시 미국과 협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로 평가된다. 같은 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며 "우크라이나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점도 서방 진영을 의식한 행보다.
이런 인도의 행태가 "어느 때보다 복잡한 외교적 곡예"(미 CNBC방송)라는 평가도 있다. 시시각각 요동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균형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협력 공간을 넓혀가는 전략적 외교를 펴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유럽 등 서로 대립하는 세력과 동시에 관계를 맺으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강대국 간 갈등 속에서도 국익 중심의 균형 외교를 취하는 자세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차 편으로 방중 길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설 것이라고 국가정보원이 전망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안보 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10월 말 경주에서는 한반도 관련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한국 외교의 균형 잡힌 전략적 선택들이 더욱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bond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