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사회

[내일은 못볼지도] 접경지 수놓은 해바라기 축제 '흔들'

연합뉴스입력
주민들이 직접 가꾼 황금빛 물결…폭염·폭우에 속수무책 "지역 꽃축제 위기…가볍게 넘길 사안 아냐" 전문가 경고
강화군 교동도 난정 해바라기정원[연합뉴스 자료사진]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태양 등진 해바라기[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 "하늘만 바라보면서 마음 졸일 수밖에 없네요."

박용구(54) 교동도 난정1리 추진위원장은 주민들이 땀 흘려 심은 수만송이의 해바라기를 둘러보면서 마냥 웃을 수 없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기예보에 비 소식까지 들려오자 걱정부터 앞선 것이다.

지난해 교동도 해바라기 정원 축제는 폭우와 폭염 여파로 인해 조기 종료되는 아픔을 겪었다.

박 위원장은 30일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염이 지속되면 해바라기들이 견딜 수가 없다"며 "불안해서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 황금빛 해바라기 물결 펼쳐지는 교동도

북한 접경지인 인천 교동도는 섬 전역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구역으로 강화도에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닿을 수 있는 섬이다.

교동도에서도 서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대규모 저수지를 품고 있는 난정리가 고즈넉한 모습을 드러낸다.

난정리 주민들은 매년 6월 중순이 되면 분주해진다. 다 같이 모여 해바라기 축제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맘때 난정리에서는 거름을 뿌려 비닐을 씌우고 해바라기씨를 파종한 뒤 옮겨심는 작업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주민들은 2019년부터 난정저수지 일대 3만㎡ 규모의 공유수면에 해바라기를 심고 8월 말 개화 시기에 맞춰 축제를 열었다.

황금빛 해바라기 물결로 접경지 평화를 염원하는 동시에 관광 활성화를 통해 마을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힘을 모았다.

땡볕 아래 굵은 땀방울이 금세 맺히지만 난정리 주민들은 축제를 즐길 방문객들을 떠올리며 수만송이 해바라기를 키워냈다.

해 질 무렵 북녘을 향해 시원하게 트인 정원에서 붉게 물든 석양과 해바라기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을 연출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폭염과 극한 호우와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주민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 폭우와 폭염에 축제 '조기 종료' 아픔도

지난해 교동도 해바라기 정원 축제는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17일간 열릴 예정이었으나 9월 1일을 끝으로 조기 종료됐다.

주최 측은 "가뭄을 비롯한 기상 영향으로 해바라기가 빨리 시들어 축제를 종료한다"는 안내문을 올렸다.

강화 지역에는 축제 전인 지난해 8월 21일 호우주의보가 발효되며 하루에만 95㎜가량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후 열흘 넘게 폭염주의보가 지속되며 해바라기들이 예상보다 일찍 고개를 숙였고 공식 축제 기간 사흘 만에 행사를 접어야 했다.

2023년에도 태풍의 영향으로 해바라기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축제를 열지 못한 주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축제는 지난 23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총 23일로 지난해보다 행사 기간을 6일 늘렸다.

다만 주민들은 처서가 지나고도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어 또다시 축제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방정식 난정1리 이장은 "올해는 꽃이 활짝 피어 상황이 괜찮다"면서도 "이상 기후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신경이 쓰인다"고 토로했다.

◇ 지역 꽃축제 위기…지구가 보내는 경고

전국적으로 개화·낙화 시기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축제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향수옥천 유채꽃 축제'는 올해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꽃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2년 연속 축제가 취소됐다.

지난 3월 전남에서는 때아닌 한파에 개화가 늦어지면서 봄꽃 축제 개막이 잇따라 미뤄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꽃 축제의 위기는 지구가 보내는 일종의 경고로 앞으로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공학과 교수는 "국내 식물들은 온대 기후에 적합한 식생이지만, 적정 기후대를 넘어서다 보니 꽃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며 "이런 상황이 농작물로 연결되는 것을 가정해보면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지역 축제는 대부분 생태계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생태계는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한 영역"이라며 "이상 기후에 따른 혼란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기후 패턴에 맞춰 축제를 열다 보니 날씨에 따라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기후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적응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goodluc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권리침해, 욕설,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 등을 게시할 경우 운영 정책과 이용 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하여 제재될 수 있습니다.

권리침해, 욕설,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 등을 게시할 경우 운영 정책과 이용 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하여 제재될 수 있습니다.

인기순|최신순|불타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