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세모녀 11년 잔인한 비극 되풀이' 복지 신청주의 개선 착수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송파세모녀'의 비극이 발생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복지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청주의'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잔인하다고 언급하면서 정부가 개선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1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지난 13일 대통령실 주최 간담회에서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 아닌가. 신청을 안 했다고 안 주니까 지원을 못 받아서 (사람이) 죽고 그러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복지 지원금 대상자에게 자동으로 지급하도록 원칙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국내 복지제도는 대부분 신청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복지부는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로 신청주의의 한계 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제도를 보완해왔다.
위기가구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가입을 독려하는 맞춤형 급여 안내 서비스인 복지멤버십이 대표적이다.
복지멤버십은 가입자의 소득·재산·연령 등을 분석해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안내하는 제도다. 올해 6월 기준 가입자 1천55만명에게 총 129종의 복지사업을 안내하고 있다. 가입 시 본인이 받을 수 있는 급여를 생애주기별로 찾아주고 소득, 재산, 연령이 달라질 때도 새로 안내해준다.
이와 함께 위기가구 발굴을 위해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위기징후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기존 행정망에 포착되지 않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다.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가 여러 차례 드러난 가운데 이 대통령마저 개선을 주문하자 복지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신청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다만 행정적 절차나 다양한 복지급여의 특성상 일괄적으로 자동 지급 전환을 할 수는 없는 만큼, 복지부에서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가부를 따질 것으로 보인다.
실무 담당자들은 복지급여 상당수가 대상자의 소득과 계좌 등 금융정보를 확보하고 개인정보를 열람해야 하므로 최소한 한 번이라도 반드시 등록 또는 신청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보편적·선별적 급여의 지급 대상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예컨대 첫만남 이용권이나 부모급여 등 보편적 급여는 소득 기준과 관계없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등록하거나 신청한 개인에게 자동 지급이 가능하게끔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도 현급 급여를 수령할 계좌가 필요하므로 본인이 최소한 한 번은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소득 기준에 따라 달리 지급되는 선별적 급여는 자동지급으로 전환하기가 더욱 까다롭다. 개인의 기본적인 신상정보뿐만 아니라 자산, 소득, 부양자 등을 파악해 적절한 대상자를 추려내려면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참에 공무원이 직권으로 복지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도 일부 사례에 한해 공무원의 직권 신청이 가능하지만, 이때도 본인 동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지근거리에서 위기가구를 발굴·지원하는 찾아가는 복지서비스가 강화되면 좋겠지만 사회복지 업무 인력 부족은 해묵은 문제다.
학계에서도 보편적 급여의 경우 자동지급으로 전환될 수 있겠지만, 선별적 급여의 경우 대상자를 추려내는 것부터 쉽지 않으므로 당장은 위기가구 발굴 등을 강화해 적극적으로 신청을 독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부분이 대상이 되는 보편적 급여와 달리 선별적 급여는 본인이 대상자인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고 이후 소득 증빙 등 행정 업무가 더해지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정부가 하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작업을 강화하는 게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개인 정보 동의와 활용이 필요한 사안이므로 일괄적 자동지급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위기가구와 취약계층을 발굴하는 데 더 집중해달라고 요구한다.
사회복지 전산망을 통합·관리해 빈틈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신청 방법을 간소화하는 것도 선행돼야 할 과제다.
기수급자의 경우 상황 변화에 따라 별도 신청 없이 추가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게끔 촘촘하게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도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나 의료급여를 받는 장애아동은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월 최대 22만원의 장애아동수당을 자동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장애아동수당 역시 과거에는 본인이나 부모 등이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었으나 지난 4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별도 신청하지 않고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복지부는 여러 제반 상황을 고려해 복지제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적절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부분이고, 대통령 지적을 계기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내부에서 대책을 마련해보겠다"며 "급여마다 (자동지급 전환) 가부 여부는 물론 필요한 절차가 모두 다른 만큼 하나하나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파 세모녀 사건은 지난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의 지하에서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생활고 끝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현금 70만원을 넣은 봉투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을 말한다. 세모녀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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