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 쌀값 대응 속 트럼프 "쌀 부족해도 안 사" 직격
지지층 때문에 쌀 수입 확대 부담…한미 관세 협상에도 영향 전망
지지층 때문에 쌀 수입 확대 부담…한미 관세 협상에도 영향 전망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종료,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내각이 '쌀'과 관련된 또 다른 난제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문제 해법으로 쌀 수입 확대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나섰지만, 집권 자민당의 중요한 지지 기반 중 하나인 농민들을 고려하면 쌀 수입을 선뜻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년의 두 배 수준으로 오른 쌀값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벌여 왔던 이시바 내각은 쌀 수입 확대 여부 결정이라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과제를 안게 됐다.

◇ '반값 비축미' 방출로 5주 연속 떨어진 쌀값…자민당엔 '선거 호재' 평가도
2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서 쌀값은 작년 여름께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쌀 5㎏ 소매가는 지난해 6월 무렵 2천엔대 초반 수준이었다.
이후 쌀값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 5월 12∼18일에는 5㎏ 평균 가격이 4천285엔(약 4만원)까지 치솟았다.
쌀값 상승 요인으로는 지속된 작황 부진, 오랫동안 고수한 쌀 생산 억제 정책, 지난해 8월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 발령에 따른 사재기, 복잡하게 얽힌 유통 구조 등이 지목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쌀값 오름세를 사실상 지켜보기만 했던 일본 정부는 올해 3월 비축미 방출을 시작하며 공급량을 늘렸다. 비축미는 본래 심한 흉작 등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방출이 가능했으나, 쌀값을 낮추기 위해 관련 지침을 바꿨다.
하지만 비축미 방출에도 쌀값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입찰 방식으로 판매한 비축미가 소매점에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5월 21일 차기 총리 후보로 언급돼 왔던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이 농림수산상에 취임했고, 그는 이른바 '반값 비축미' 방출 등을 통해 쌀값을 5주 연속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16∼22일 쌀 5㎏ 평균 소매가는 3천801엔(약 3만6천원)으로, 한 달 전과 비교하면 10%가량 하락했다.
고이즈미 농림상은 쌀값을 잡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고 공언했고, 주식용 쌀 수입 시기도 앞당기기로 했다.
일본 국민 다수는 고이즈미 농림상의 쌀값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쌀값 상승세가 꺾인 지난달 초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
이달 20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호재는 고이즈미 농림상의 쌀값 정책뿐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비축미 재고가 떨어져 가고 있어서 향후 쌀값이 어떤 추이를 보일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된다.
자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연립 여당 공명당과 함께 과반 의석수를 유지하지 못하면 이시바 총리는 퇴진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 日, 옥수수·대두 수입 제안은 실패…트럼프 압박 거부해도 '교섭 카드' 추가해야
일본은 미국과 관세 협상을 이어오면서 미국산 옥수수, 대두 등 농산물 수입 확대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간 무역 협상에서 '성역'으로 간주해 왔던 쌀 수입을 늘리는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 내에서 쌀 농가와 관계를 맺어온 '농림족' 의원들은 쌀만큼은 관세 협상에서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일본의 쌀 수입을 연일 문제시하면서 일본 정부 입장은 난처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일본을 향해 "그들은 대량의 쌀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 쌀을 수입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고, 이튿날에도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쌀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미국산 쌀을 수입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농업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은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지켜야 할 것은 지키겠다"며 쌀 수입을 '교섭 카드'로 검토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나타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5% 자동차 관세를 낮추기 위해 농산물 수입 확대 외에도 반도체 대량 구매, 조선·항공 분야 협력 등을 미국 측에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유예 기한을 약 1주일 앞두고 쌀을 특별히 지목해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시바 내각은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선거 등을 고려하면 당장 쌀 수입을 늘리기는 어려운 탓에 쌀 수입 확대를 대신할 만한 교섭 카드를 준비하는 작업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고이즈미 농림상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해 "협상 과정에서 여러 의도와 전략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일본은 연간 약 77만t의 쌀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으며, 그중 주식용은 최대 10만t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물량 외에도 민간 업체가 쌀을 수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당 341엔(약 3천200원)의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은 일본처럼 자동차 수출량이 많고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 강도 높은 압박 전술을 펴고 있지만, 한국보다 협상 횟수가 많았던 일본이 미국과 합의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겨냥해서도 민감한 품목의 수입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는 전략을 또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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