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윤준석 기자) 잉글랜드가 자국 팬들 앞에서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구겼다.
아프리카 강호 세네갈을 상대로 역전 패배를 당하며, 토마스 투헬 감독 체제의 위기 가능성을 드러냈다.
수비 조직력이 큰 문제로 지적됐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새 시대'를 열겠다는 투헬의 실험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모습이다.
바이에른 뮌헨 사령탑 시절, 김민재를 철저히 외면하고 벤치에 앉혔던 그가 이번에는 잉글랜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치른 시험 무대에서도 특유의 실험적인 라인업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지도력에 의문을 사고 있다.
당시에도 김민재를 외면하고 에릭 다이어를 기용했던 투헬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불안한 수비 조합'을 고수하다 참사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잉글랜드는 11일(한국시간) 영국 노팅엄의 시티 그라운드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세네갈에 1-3으로 완패했다.
전반 해리 케인의 선제골로 기세를 잡는 듯했지만, 전반 막판부터 수비 집중력이 무너지며 후반에만 두 골을 더 허용해 완전히 무너졌다.
이날 패배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잉글랜드는 그동안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A매치에서 15승 6무라는 무패 전적을 기록 중이었지만, 22번째 경기 만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세네갈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는 등 만만한 팀은 아니지만 최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2회 연속 준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가 이기지 못할 팀은 아니다.
세네갈전 패배는 투헬 감독이 지난 3월 부임 이후 치른 네 번째 경기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한 날이기도 하다.
특히 사흘 전 치른 이베리아 반도 소국 안도라와의 경기에서도 1-0으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며 내용 면에서는 실망을 남긴 바 있어, 최근 두 경기에서의 부진은 단순한 실험 정신으로 안도하기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투헬 감독은 지난 안도라전과는 전혀 다른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당시 출전했던 11명 중 해리 케인만을 제외하고 무려 10명을 교체했다.
선발 라인업은 4-4-2 포메이션으로 구성됐다. 딘 헨더슨 골키퍼가 골문을 지켰고, 루이스 스켈리, 라비이 콜일, 트레보 찰로바, 카일 워커가 수비라인을 구성했다. 중원에는 앤서니 고든, 데클란 라이스, 코너 갤러거, 부카요 사카가 포진했고, 최전방 투톱에는 케인과 에베레치 에제가 나섰다.
이에 맞선 세네갈은 4-3-3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에두아르 멘디가 골키퍼 장갑을 낀 채, 아부 디우프, 무사 니아카테, 칼리두 쿨리발리, 크레팡 디아타가 백4를 구축했다. 중원은 라민 카마라, 이드리사 게예, 하비브 디아라가 나섰고, 최전방 스리톱에는 일리만 은디아예, 니콜라 잭슨, 이스마일라 사르가 상대 골문을 노렸다.
잉글랜드는 경기를 기분 좋게 시작했다. 전반 7분 상대 진영 중원에서의 강한 압박으로 세네갈의 빌드업을 끊어낸 잉글랜드는 곧장 역습에 나섰다. 고든이 박스 왼쪽에서 강하게 때린 오른발 슛이 골키퍼 멘디의 손에 맞고 흘렀고, 이를 케인이 골문 바로 앞에서 침착하게 왼발로 마무리하며 잉글랜드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선제골 이후 완전히 주도권을 놓쳤다. 세네갈의 중원 압박에 고전했고, 특히 측면 수비에서의 불안함이 도드라졌다.
결국 전반 40분 세네갈의 잭슨이 우측면을 돌파해 낮은 크로스를 올리자 사르가 워커보다 빠르게 문전으로 침투해 오른발 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 장면은 잉글랜드 수비의 집중력 저하와 노쇠화된 워커의 느린 대처가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후반전 들어서도 잉글랜드는 분위기 반전에 실패했다. 오히려 세네갈이 더욱 자신감 있게 경기를 풀어갔다.
후반 17분 쿨리발리가 후방에서 길게 넘긴 패스를 디아라가 오른쪽 측면에서 받아낸 뒤 단독 드리블로 골지역 우측까지 침투했고, 골키퍼 헨더슨의 다리 사이로 차 넣으며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잉글랜드 수비진의 뒷공간은 속수무책으로 노출됐다.
잉글랜드는 후반 막판 총공세에 나섰다. 교체 투입된 모건 깁스-화이트, 주드 벨링엄 등이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특히 사카의 왼쪽 돌파와 슈팅도 위협적이었다.
후반 39분 코너킥 상황에서 벨링엄이 문전 혼전 중 오른발로 차 넣은 골이 한때 동점골로 선언됐지만, VAR 확인 결과 직전 콜윌이 핸드볼을 범한 사실이 드러나며 득점이 취소됐다.
결국 세네갈은 후반 추가시간 잉글랜드의 파상공세 틈을 타 역습에 성공했다. 수비에서 끌어낸 롱볼을 받아낸 교체 투입된 셰이크 사발리가 왼쪽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침착하게 오른발 슛을 골대 오른쪽 하단에 꽂으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결국 경기는 1-3 잉글랜드의 완패로 끝이 났다.
경기 후 투헬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전반적으로 '냉각'된 듯한 경기였다. 선수들이 긴장한 모습이었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적극성이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2-1로 뒤진 이후에야 공격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동점골도 넣었지만 VAR로 취소됐다. 마무리 역습까지 당한 건 뼈아프다"고 덧붙였다.
대표팀 주장 케인 역시 "전반적인 경기력이 부족했다. 패스 타이밍과 템포가 어긋났고, 1대1 상황에서도 밀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완전히 바뀐 선발 명단에 대해서는 "일부 신예들이 처음 경험하는 국제무대에서 흔들린 부분도 있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월드컵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우측 풀백으로 선발 출전한 베테랑 수비수 워커의 부진도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이날 A매치 96번째 출전을 기록한 워커는 사르의 동점골 상황에서 반응이 늦어 추격에 실패했다. 스카이스포츠 해설을 맡은 로이 킨은 하프타임에 "이건 집중력 문제가 아니다. 그냥 게으른 수비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워커는 지난해 불륜으로 인란 가정 파탄 때문에 영국에서 큰 화제가 됐던 수비수다. 전 소속팀 맨시티에서 사생활 문제에 따른 경기력 저하로 퇴출된 뒤 지금은 이탈리아 AC밀란에서 뛰고 있다.
이번 평가전에서 그의 노쇠화와 위치 선정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며, 투헬호 수비 재편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역사적인 패배 뒤, 투헬은 과연 축구종가를 월드컵 정상으로 이끌 수 있을지 축구 팬들의 관심이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윤준석 기자 redrup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