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60년 부산과 일본] 낯선 땅 한국에 남은 일본인 아내들
연합뉴스
입력 2025-06-07 07:00:06 수정 2025-06-07 07:00:06
광복 전후 조선인 남편 따라 한국행…반일 감정·가족 냉대
해방 후 日 부산영사관 찾아 도움 요청…후원회, 모국 방문 지원


부용회 회원들[부용회 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부산은 한일 관계의 굴곡진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온 도시입니다. 부산항 개항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산업화를 거치며 쌓아온 교류의 흔적이 지역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부산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며 한일 관계의 과거를 되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기획 기사를 10회에 걸쳐 매주 한 차례 송고합니다.]

부용회 후원회 행사[부용회 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향한 조선 청년들이 있었다.

징용, 유학, 사업 등 이유로 일본에 건너간 이들은 그곳에서 일본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 전후 조선인 남편을 둔 일본인 아내 5천명가량은 배우자를 따라 낯선 땅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극심한 냉대였다.

결국 일부는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나머지는 한국에 머물며 1963년 '재한 일본인 처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부용회'라고 불렸다. 모임의 이름을 무궁화라 할 수도, 벚꽃이라 할 수도 없어 중국 꽃 '부용'이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인 남성과 결혼한 상황은 같았지만, 국적은 사람마다 달랐다.

한국 남자랑 결혼했지만 일본 국적이 정리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한국 국적만 있거나 이중국적인 사람도 있었다.

부용회 후원회 행사[부용회 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반일 감정이 극심했던 당시 이들이 받았던 구박과 멸시는 극심했다.

부용회 후원회에 따르면 당시 부산항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간다던 남편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고, 총각인 줄 알았더니 애가 두셋 딸린 유부남인 사례도 있었다.

남편이 공직에 있는 경우 일본인 아내가 부담돼 이혼하거나, 며느리를 호되게 구박하는 시어머니도 있었다.

이에 1960년 한 신문에는 '국제 파혼에 우는 일녀(日女)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해방 이후 15년 동안 파혼으로 외무부 부산출장소를 찾아온 일본 여인이 800명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자녀들로부터 버림받기도 했다.

3·1절이나 광복절이면 학교에 간 자녀들이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폭행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와 같은 날에는 자녀를 학교에 아예 보내지 않거나, 애초부터 엄마가 일본인인 사실을 숨겼다. 모친에 대한 분노가 심해지면서 결국 가족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안양로 부용회 후원회 회장은 "홀로 남게 된 할머니들은 모찌떡 장사, 식모, 술집 잡부, 구걸 등을 했다"며 "1950년 한국전쟁 때는 배가 고파 중국 군인들 식사를 돕는 일도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용회 후원회 행사[부용회 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용회 할머니는 스스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었다.

안양로 회장은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가 계신 상황에서 스스로 한국 남자와 결혼한 것이 억울하다던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를 돕는 한국인이 생겨났다.

주부산 일본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최병대 씨는 영사관에 일본인 여성들이 찾아오자, 이를 일본 정부에 보고한 뒤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이들의 귀국을 돕고, 고향 방문 행사를 마련해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8년에는 어려움을 겪는 부용회 할머니를 돕기 위해 '부용회 후원회'가 생겼다.

후원회는 할머니들의 모국 방문을 돕거나 생활비, 병원비 등을 지원했다. 안양로 회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한일본대사의 표창과 외무상 표창을 받았다.


한국에 남은 이들은 1998년에만 해도 500여명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1명에 불과하다.

96살의 야마구치 마스에(山口眞須惠)씨는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양국의 배려로 이중국적을 가진 야마구치 씨는 공무원이었던 남편 덕에 공무원 연금을, 일본 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회장은 "이제 1명의 할머니가 남은 만큼 어떻게 마무리를 잘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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