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60년 부산과 일본] 바다 위의 역사, 부관연락선 120년
연합뉴스
입력 2025-05-31 07:00:03 수정 2025-05-31 07:00:03
우리나라 최초 정기 국제여객선 항로 부산∼시모노세키 운행
독립운동가부터 비운의 성악가도 탑승…역사 현장 함께한 선박


부관연락선 부두로 활용된 부산항 제1부두[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편집자 주 =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부산은 한일 관계의 굴곡진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온 도시입니다. 부산항 개항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산업화를 거치며 쌓아온 교류의 흔적이 지역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부산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며 한일 관계의 과거를 되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기획 기사를 10회에 걸쳐 매주 한 차례 송고합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촬영 이영희]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1905년 9월 11일 낯선 배 한 척이 부산항에 닿는다.

국제 여객선 '잇키마루'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들어온 것이다.

일본 산요기선 소유의 잇키마루는 1천680t급으로, 240㎞에 달하는 거리를 11시간 반에 걸쳐 도착했다.

당시 일본은 부산을 비롯해 인천, 원산 등에 일본인 거류지역을 조성했는데, 바닷길을 개척함으로써 자국민의 편의를 높이고 무역을 증진하고자 했다.

이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여객선이 점차 늘었고, 이 항로를 오가는 정기 국제여객선을 통칭 '부관연락선'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부산(釜山)의 부(釜)와 시모노세키(下關)의 관(關)에서 따 온 '부관'과 일본 산요 철도와 경부선을 연결한다는 의미의 '연락선'(해상철도)을 합친 이름이다.

부관훼리 하마유호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운항하는 부관훼리 하마유호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입항한 모습. (촬영 조정호) 전경

올해는 부관연락선이 오갔던 우리나라 최초의 정기 국제여객선 항로인 부산∼시모노세키 항로가 개설된 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부관연락선은 해방 직전인 1945년 6월 운항을 중단할 때까지 13척의 화객선을 운항하면서 3천만명의 여객을 실어 날랐다.

승객은 다양했다. 일본의 고위 공무원부터 농민, 상공인, 학생, 노동자 등 일반 서민이 탑승했다.

부관연락선 징용자 진혼제[연합뉴스 자료사진]

일제 치하의 역사 속에서 부산과 일본에 오간 만큼 부관연락선은 역사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1919년 초 미국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 자결주의 원칙은 동경에서 유학하던 조선인 유학생에게 큰 자극을 주었고, 학생들은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 사실을 국내 전파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김마리아가 독립선언서를 기모노에 숨긴 채 부관연락선에 올랐다. 이는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학도병과 위안부 할머니가 부관연락선을 타고 슬픔과 고통이 서린 현장으로 떠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1926년 신혼여행차 일본에 갔다가 부관연락선으로 부산에 온 스웨덴의 왕세자 구스타프 6세가 경주 노서리 서봉총 발굴 현장에서 금관을 출토했다.

부관연락선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야기 소재가 되기도 했다.

'사의 찬미'를 부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은 1926년 부관연락선을 타고 가던 중 연인이던 극작가 김우진과 대한해협에 몸을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연극 '관부연락선', 드라마 '사의 찬미' 등으로 제작됐다.


지금도 이 항로는 변함없이 운영 중이다.

광복 이후에는 휴항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한일 국교가 정상화하면서 부산∼시모노세키 항로가 승인됐다.

현재는 부관훼리가 성희호 등을 운항하고 있다.

psj1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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