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게임에 대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창간기획으로 게임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게임업계를 발전시키는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 봤다. 여기에 정리한 인물 중에는 지금도 잘 알려진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혹은 지금은 잊혀진 사람도 있겠으나 게임업계의 탄생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정리해 봤다.
◇ 존 카맥
FPS 게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울펜슈타인’과 ‘둠’, 그리고 ‘퀘이크’를 탄생시킨 전설적인 프로그래머 존 카맥. 그는 존 로메로와 함께 1990년, 이드소프트를 설립했다. 당시 닌텐도의 패밀리컴퓨터에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부드러운 스크롤 기법을 사용한 게임이 인기를 얻었으나 MS-DOS 시절의 PC에서는 자연스러운 스크롤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존 카맥은 ‘커맨더 킨’을 통해 자연스러운 스크롤을 PC에서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커맨더 킨’ 이후 3D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3D 엔진 개발에 매진한 그는 1992년 ‘울펜슈타인 3D’를 탄생시켰다. 최초의 FPS 게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임 전의 1인칭 시점의 게임은 주로 던전 RPG 등에 많이 사용됐다.
‘울펜슈타인 3D’가 성공한 이후 1993년에는 ‘둠’을 탄생시켰다. ‘울펜슈타인’은 3D 그래픽이지만 필드는 평면으로 구성됐으나 ‘둠은’ 높낮이가 있는 입체 필드를 구현했다. 또한 1996년에는 본격적인 폴리곤 그래픽을 사용한 ‘퀘이크’를 탄생시키며 이드소프트는 에픽게임즈와 함께 3D 그래픽 게임엔진을 대표하는 게임사가 됐다. 존 카맥은 메가 텍스쳐 기법을 공개하며 이를 활용한 ‘레이지’를 2011년에 출시했다. 그러나 이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존 카맥은 2013년, 이드소프트를 떠났다.. 그는 팀 스위니와 함께 3D 게임 엔진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 팀 스위니
존 카맥과 비견되는 천재 프로그래머로 평가받는 팀 스위니. 그는 게임 ‘언리얼’과 언리얼 엔진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팀 스위니는 1991년 창업한 이후 액션 퍼즐 게임 ZZT을 출시하여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90년대국내 PC 게이머에게도 잘 알려진 횡 스크롤 액션 게임 ‘질 오브 더 정글’과 많은 놀라움을 안겨준 ‘재즈잭 래빗’을 탄생시켰다. 특히 1994년에 탄생한 ‘재즈잭 래빗’은 마치 세가의 ‘소닉 더 헤지혹’을 연상시키는 초고속 스크롤을 PC에서 구현했다. 또한 보너스 게임은 3D로 구성하며 수준 높은 기술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에픽게임즈는 FPS 게임 ‘언리얼’ 시리즈를 통해 기술력을 과시하게 된다. 1998년에 출시한 FPS 게임 ‘언리얼’은 이드소프트의 ‘퀘이크’에 뒤지지 않는 그래픽과 기술력을 보여주며 에픽게임즈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게임은 원래 개발자가 모눈종이에 수작업으로 맵을 그리며 개발하고 있었으나 팀 스위니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언리얼 에디터를 만들며 게임과 함께 게임 엔진 작업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아는 언리얼 엔진이 탄생했다. 이후 언리얼 엔진은 계속 발전하며 게임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도 사용하는 유명 게임 엔진이 됐다.
또한 2017년에는 ‘포트나이트’를 공개하며 하나의 게임을 뛰어넘는 플랫폼으로서 발전시키고 있다. 2018년에는 에픽게임즈스토어를 런칭하며 스팀과 유사한 온라인 디지털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팀 스위니가 탄생시킨 언리얼 엔진 덕분에 게임 개발자들은 더 빠르고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됐고 게임 엔진이 거대한 사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 구타라기 켄
구타라기 켄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닌텐도와의 슈퍼패미컴 CD-ROM 계약이 파국을 맞으면서 소니를 설득해 당시 어린이 완구처럼 평가받던 게임시장에 참가하게 만들었다. 구타라기 켄은 개발하기 쉬운 구조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설계했고 당시는 반도체를 사용하는 롬 카트릿지의 높은 단가와 추가발주 기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점이 있었다. 구타라기 켄은 CD-ROM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CD-ROM을 사용한 덕분에 게임 가격은 슈퍼패미컴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고 추가발주 기간도 크게 줄였다. 당시 슈퍼패미컴의 게임 가격은 10만원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으나 플레이스테이션은 반도체가 필요없는 CD-ROM의 장점을 살려 4, 5만원 수준으로 게임 가격을 대폭 하락시켰다.
개발하기 쉽고 안정적인 3D 그래픽 성능을 가진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업계의 초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판매량을 늘려 나갔다. 그리고 일본 RPG의 양대 산맥인 ‘파이널 판타지’와 ‘드래곤 퀘스트’를 닌텐도 진영에서 빼앗아 오는 등 플레이스테이션을 콘솔 게임기의 대명사로 만들어 냈다.


◇ 게이브 뉴웰
스팀이 없었다면 PC 게임시장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스팀을 통해 전세계 PC 게이머들은 편리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구매하고, 또 업데이트를 받고 많은 게임을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 또한 스팀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게임을 할인하여 판매하기 때문에 게이브 뉴웰은 연쇄 할인마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 스팀을 만든 사람이 바로 게이브 뉴웰이다. 게이브 뉴웰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며 윈도우 시리즈를 개발하다가 이드소프트가 탄생시킨 ‘둠’의 엄청난 인기로 게임업계에 관심을 갖고 1996년, 밸브를 창업했다. 이후 첫 작품인 ‘하프라이프’를 출시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하프라이프’의 모드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팀 포트리스’ 등을 출시했고 2004년에는 ‘하프라이프 2’를 출시하며 성공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스팀이다. 밸브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인기 속에 게임 업데이트를 자동으로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스팀을 탄생시켰다. 스팀 전까지는 밸브가 업데이트 파일을 공개하면 사람들이 일일이 해당 업데이트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게임에 적용할 때까지 게임에 접속을 할 수 없었다. 이에 밸브는 자동으로 게임을 업데이트하고 멀티 플레이에서 문제가 되던 치트 방지와 게임 카피를 막기 위해 스팀이라는 플랫폼을 개발하게 됐다
2003년에 탄생한 스팀은 최초에는 게임의 업데이트를 자동으로 해주는 역할을 위해 탄생했으나 2005년부터는 서드파티 계약을 통해 본격적인 게임 판매 ESD로 발전해 나갔다. 이후 스팀은 지금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며 편리하게 게임을 구매, 관리하고 방송하거나 커뮤니티 하는 등 PC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ESD로 성장하며 변방으로 평가받던 PC 게임시장을 급격하게 성장시켰다.


◇ 시머스 블랙클리, 캐빈 바커스, 오토 벅스, 테드 헤이즈
낯선 이름일 수 있는 이 4인방은 엑스박스를 탄생시킨 초기 멤버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레이스테이션 2의 발표에 불안감이 생겨났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거실의 셋탑박스로서 자리매김하고 TV와 거실을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제 PC 기술은 기술의 발전으로 가전제품의 영역을 넘보게 됐다. 윈도우 95 출시와 인터넷의 대중화, 멀티미디어의 능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제 PC는 사무실이나 서재가 아닌 거실의 TV를 장악해야 했다. 하지만 소니가 강력한 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표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웹 TV와 콘솔 게임기인 엑스박스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 4인방은 수면 아래에서 엑스박스를 준비하며 빌 게이츠를 납득시키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콘솔 게임기 엑스박스를 탄생시키도록 이끌었다. 초대 엑스박스는 PC에서 사용하는 범용적인 부품을 통해 엑스박스를 탄생시켰다. 인텔의 펜티엄 3 기반의 CPU, 엔비디아의 그래픽 칩셋이 탑재되고 콘솔 게임기로서는 최초로 하드디스크도 기본 탑재하는 등 플레이스테이션 2를 능가하는 고성능를 갖고 있다. 또한 인터넷 접속도 가능하여 엑스박스 라이브를 통해 멀티 플레이 게임도 즐길 수 있었다.
이 4인방은 콘솔 게임기에 최초로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온라인 기능을 기본 탑재하며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콘솔 게임기로 엑스박스를 탄생시켰다.


◇ 젠슨 황
게이머에게 황 회장으로 불리는 젠슨 황. 그가 없었다면 PC 3D 그래픽 기술의 발전은 훨씬 느렸을 것이다. 젠슨 황은 AMD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활약했으나 1993년,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코우스키, 커티스 프리엠 3명이 뭉쳐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그들은 NV1이라고 부른 3D 그래픽 칩을 생산하기 위해 2년 동안 매진했다. 이 칩은 3D 게임 시장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그래픽 칩으로서 수백달러 수준의 가격에도 다양한 3D 그래픽 효과를 구현했다.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쥬라기 공원’ 영화 제작을 위해 사용한 슈퍼 컴퓨터가 10만 달러 수준이었으니 저렴한 가격으로 멋진 3D 그래픽 카드를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NV1은 성공하지 못한다. 당시에는 게임업계가 3D 그래픽 게임에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를 번들로 끼워 출시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세가의 새턴 이후 콘솔 게임기인 드림캐스트에 들어갈 그래픽 칩 NV2를 개발하게 된다. 하지만 세가는 NV2에서 폴리곤 이미지를 확대하면 이미지 손실이 크게 발생하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결국 세가와의 계약은 취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엔비디아는 콘솔 대신 PC 그래픽 카드에 집중하며 1997년 리바 128을 출시해 성공시킨다. 이후로도 리바 TNT, 리바 TNT 2, 1999년 지포스 256을 출시하며 당시로서는 놀라운 고품질 그래픽을 선보였다. 이후 엔비디아는 PC, 노트북, 워크스테이션, 콘솔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 그래픽 칩을 제공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오늘날 콘솔 및 PC 게이머들이 고품질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황 회장의 역할이 컸다.

이렇게 게임 업계의 탄생과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11명을 추려봤다. 더 많은 사람을 다루고 싶었으나 11명으로 선정하다 보니 아쉬움도 남는다. 게임업계가 오늘날 이렇게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한 데에는 위대한 인물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