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60년 부산과 일본] 대일 무역의 중심, 초량왜관
연합뉴스
입력 2025-05-03 08:00:07 수정 2025-05-03 08:00:07
조선에 설치된 왜관 중 가장 큰 규모로 무역과 외교의 장
5일마다 물물교환 방식 거래…밀무역 막으려 금지조항 만들기도


세계기록유산 등재된 '왜관도'[국립중앙박물관 제공=연합뉴스]

[※ 편집자 주 =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부산은 한일 관계의 굴곡진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온 도시입니다. 부산항 개항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산업화를 거치며 쌓아온 교류의 흔적이 지역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부산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며 한일 관계의 과거를 되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기획 기사를 10회에 걸쳐 매주 한 차례 송고합니다.]

약조제찰비 해석[부산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1600년대 부산 앞바다에 낯선 소리가 메아리친다.

양손에 술과 간장, 달콤한 과자를 든 일본 상인들의 목소리다.

이들이 찾아온 곳은 조선이 공식적으로 허락한 교역 창구, 바로 초량왜관이다.

조선에 설치된 왜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초량왜관은 조선 후기 설치됐다.

앞서 조선 전기에는 부산포 왜관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직후 절영도 왜관, 두모포 왜관이 들어섰다.

이어 70년이 지난 1678년 초량왜관이 설치됐는데 일본 사절과 관리, 상인 등이 거주하면서 외교와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왜관에 관한 모든 권한은 조선 정부에 있었으며, 엄연히 조선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초량왜관이 있던 곳은 현재의 부산 중구 중앙동, 광복동, 동광동, 대청동 일대다.

당시 두모포 왜관보다 10배 이상 큰 약 10만평 부지에 지어졌다.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눠 동관은 상인들이 무역 등 경제활동 거점으로 이용했고 서관은 사절과 관리들이 외교의 장으로 사용했다.

이곳에는 배가 닿을 수 있도록 선창을 비롯해 통역관 집무소인 성신당, 왜인들에게 땔감과 숯을 공급하던 시탄고 등이 들어섰다.

조선후기 부산초량왜관 그린 '초량화관지도' 첫 공개 [부산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초량왜관은 조선 후기 한반도 내 유일한 교류 공간으로서 기능을 유지했다.

1876년 근대 개항 때까지 200여년 동안 조선과 일본의 외교·무역 거점 역할을 했다.

왜관에서의 무역은 조선의 관리 아래 월 6회 5일마다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으로 구리, 주석, 밀랍으로 만든 촛불, 술, 간장, 과자 등을 수입했다.

반면 조선은 쌀, 콩, 금, 은, 무명천(면포) 등을 수출했다.

그 결과 왜관 근처의 상인들이나 관리, 역관, 아전 중에는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거래가 성행하면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밀무역이 조정의 근심거리가 되기도 했다.

조선 조정은 왜관을 관할하는 동래부사에게 밀무역을 단속하고 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동래부사는 이에 초량왜관 내 늘어나는 폐단을 방지하고자 5가지의 금지조항을 일본과 정한 뒤 비석 '약조제찰비'에 새겨 널리 알렸다.

부산박물관 관계자는 "현재 부산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약조제찰비에는 왜인들이 왜관 경계선 밖에 함부로 나오지 말고, 조선인이 왜인에게 돈을 빌리지 말며, 밀매매하지 말라는 내용 등이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한문과 일문으로 만들어져 조선 측 수문과 일본 측 경계에 세웠으나 현재는 한문으로 새겨진 조선 측 비석만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초량왜관터제공 부산관광공사. 부산시 중구 초량왜관 터.

왜관은 일본 사신이 머물며 외교 업무를 수행하는 사관(使館)이기도 했다.

부산에 도착한 일본 사신들의 일정은 왜관 북쪽에 있던 초량객사에서 시작됐다.

원래 객사는 역대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 두고 관리가 주기적으로 절을 올리던 곳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일본 사절의 상경이 금지되면서 조선 국왕을 직접 볼 수 없게 됐다.

이에 사신들은 부산에 도착하면 먼저 초량객사에서 조선 국왕의 전패에 절을 올리고 예물을 증정했다.

동래부사는 이어 일본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초량왜관의 북쪽 인근에 있는 연향대청에서 환영연을 열었다고 한다.

부산박물관 관계자는 "초량왜관은 조선 조정이 일본과 교류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땅으로 조선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며 "양국이 당시 왜관 내 평화와 통제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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