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보다 과장·축소된 인체조각 등 10점…두개골 100개로 이뤄진 '매스'
아시아 첫 개인전…"전시장 밖, 다른 상상으로 이끄는 작품들"
아시아 첫 개인전…"전시장 밖, 다른 상상으로 이끄는 작품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극사실적인 초대형 인물 조각으로 유명한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67)의 개인전이 1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장난감 제작자였던 아버지를 둔 뮤익은 호주에서 어린이 TV쇼의 특수효과 제작자 등으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와 광고 업계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화가 파울라 헤구와 협업한 작품을 1996년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선보이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작가로서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이듬해 영국 왕립예술아카데미(RCA)에서 열린 '센세이션' 전이었다. 데이미언 허스트 등 이른바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세상에 알린 그 전시다. 뮤익은 이 전시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2분의 1 크기로 재현한 작품 '죽은 아빠'(Dead Dad)를 출품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30여년간 활동했지만 혼자서 작업하며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수개월, 수년이 걸리는 작가의 작품은 지금껏 총 48점뿐이다. 뮤익의 아시아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이 중 시기별 주요 작품 10점을 모아 소개한다. 2021년 리움미술관 재개관전에 소개된 '마스크II'와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카르티에 재단 소장품전에 나온 '침대에서'와 '쇼핑하는 여인', '나뭇가지를 든 여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소장품인 '치킨/맨'은 처음으로 뉴질랜드 밖에서 전시된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2002년작 '마스크 II'다. 실제 인간 얼굴의 4배 크기인 이 작품은 일종의 자소상이다. 수염 자국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해 살아 있는 듯 하지만 뒷면에서 보면 텅 비어있어 제목처럼 '껍데기'나 '가면'에 불과함을 알게 되는 작품이다.

가로 6m 50cm 크기로 이불을 덮은 채 침대에 누운 인물을 재현한 '침대에서'(2005년작)는 초대형 인물상이라는 뮤익의 작품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객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저 너머를 보고 있는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며 작품 앞에 머물게 된다.
뮤익은 실제보다 작게 축소된 인물 작업도 한다. 현실에 있을 법한 모습부터 꿈이나 신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장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모습 등 여러 모습을 표현한다.
전시에는 암탉과 마주한 중년의 남성을 표현한 '치킨/맨'(2019)이나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10대 연인을 표현한 '젊은 연인'(2013), 양손에 묵직한 장바구니를 든 채 외투 속에 지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을 묘사한 '쇼핑하는 여인'(2013) 등이 나왔다. 역시 상상의 영역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작품들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매스'(Mass)다. 2017년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의뢰로 제작된 이 작품은 각각 무게 60kg, 높이 1.2m 크기인 두개골 형상 100개로 구성됐다. 제작될 때부터 공간 특성에 맞춰 다르게 전시되는 것을 전제로 만든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넓지는 않지만 층고가 14m에 이르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장의 특성에 맞춰 쌓여있던 두개골들이 무너져 내린 듯한 모습으로 설치됐다.
협력 큐레이터로 참여한 찰리 클라크(론 뮤익 스튜디오)는 "작가가 파리 카타콤(지하 묘지)을 방문했을 때 100년이 넘는 시간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뼈와 그 뼈들이 무너져 내린 형태를 봤던 강렬한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조각 작품의 특성상 대부분의 작품은 뒷면도 볼 수 있다. '마스크 II'나 '젊은 연인'은 특히 뒷면까지 살펴봐야 하는 작품들이다.
뮤익의 작품은 극사실적으로 재현된 인물 모습에 먼저 눈이 간다. 그러나 정교한 기술에 감탄한 뒤에는 작품 속 숨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고 때로는 나와 주변의 이야기로 생각이 이어지게 된다.`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뮤익의 작품은 그 자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보다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주변의 인물들과 연계된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죽은 아빠'를 통해서는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를, '쇼핑하는 여인'을 보고는 갓 아이를 낳은 친구를 생각하게 되는 식으로 전시장 안에서 감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 전시장 밖으로, 다른 상상으로 관람객을 이끈다는 점이 론 뮤익 작품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홍 학예연구사는 "이들 조각 작품과 눈맞춤을 하면서 작품들이 전시장 너머 바깥세상 어느 곳을 보고 있는지를 상상해보면 감상의 폭이 확장될 것"이라고 권했다.
이번 전시는 2005년부터 뮤익을 지원하는 프랑스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이 함께 기획했다.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키아라 아그라다 큐레이터는 "뮤익의 작품은 대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작가의 작업 과정과 예술가로서의 삶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작업실 사진 연작 12점과 다큐멘터리 2편을 함께 선보인다. 사진과 다큐멘터리는 25년간 작가의 작품이 제작되고 설치되는 과정을 기록해 온 프랑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고티에 드블롱드의 작품이다. 외부와 접촉을 많이 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작업이다.
7월 13일까지. 유료 관람. 전시는 내년 일본의 모리 미술관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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