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인조이 하고 있어?'... 심즈 20년차가 체험해 본 '인조이(inZOI)'
3월 28일 오전 9시, 크래프톤의 '인조이(inZOI)'의 얼리억세스 버전이 출시됐다. 출시 전부터 위시리스트 1위의 위엄과 함께 '심즈(Sims)'시리즈도 제공하지 않았던 '크리에이터' 버전을 먼저 풀어줌으로써 새로운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을 기대하는 팬층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결국 출시 40분만에 스팀 글로벌 탑 셀러 1위에 등극했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심즈' 시리즈와 '인조이'를 비교하는 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따라서 '인조이' 하면 '심즈'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그 시절 어린이들의 인형놀이였던 '심즈'
2004년, '심즈 2' CD가 너무 갖고싶어 부모님을 강하게 설득했던 기억이 있다. '심즈'는 그 시설 꼬꼬마들이 절실하게 갖고 싶었던 게임이었다. 당시 불법 복제로 떠돌던 '심즈 1'은 게임 특성상 커스터마이징의 한계와 외형 꾸미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두근두근 데이트' 확장팩 하나를 위해서 일부만이 소소하게 즐기던 게임이었다. 반면, '심즈 2'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혁명 그 자체였다. 외형 커스터마이징은 물론 디테일해진 3차원 그래픽 덕분에 남녀 불문하고 한번쯤은 '심즈 2'를 플레이해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디를 설치한 날 이틀 내내 잠을 못 이뤗을 정도로 재밌게 플레이했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제일 먼저 심즈부터 켯다. '심즈' 시리즈는 출시 이후 대체제가 없을 정도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계의 패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던 2025년, 감히 심즈의 대항마라고 불릴 수 있는 게임이 국내에서 정식 출시되었다. 어릴적 함께 심즈를 즐겼던 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연락와서 하는 말이 있다. '너 인조이(inZOI) 커마 하고있어?!' 이미 친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실사화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심즈'만 20년을 해 온 유저는 '인조이'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심즈 시리즈는 커스터마이징 최강자였지만 플레이어들은 기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들에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Mod(modification)'나 아이템을 개별로 다운받아야 했다. 이는 공식적인 플레이 루트가 아니기 때문에 게임이 업데이트 되면 게임에서 에러가 나거나 파일을 다운받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심즈 제작진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아이템들을 자체적으로 제작했지만 팬들이 만드는 것 보다 떨어지는 퀄리티에 비싼 가격으로 인해 출시 때마다 외면당했다. 그리고 심즈를 해보면 내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마약이나 유흥과 같은 기능들도 모드(MOD)로 만들어지면서 윤리적 문제가 여러번 발생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심즈의 커스터마이징 세계는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인조이'를 약 10시간 정도 플레이해본 결과, 인조이는 이러한 디테일 변태들의 모든 요구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014년에 출시한 심즈에 비해서 당연히 그래픽 퀄리티라던가 기능들이 더 추가된 것은 맞지만 심즈와는 지향점이 다르다. '심즈'는 한명 한명 가지고 노는 인형놀이 같다면 '인조이'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

왜 굳이 심즈에는 제공하지 않는, 도시를 낡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을까? 플레이 당시에는 필요한 기능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플레이할 수록 이것이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꼈다. 같은 해양도시 맵이더라도 도시가 깨끗하고 정돈되면 샌프란시스코나 뉴욕과 같은 부유한 항구도시임을 알 수 있고, 도시가 낡고 야생 동물이 많이 출몰한다면 동남아시아나 남미의 항구도시 느낌이 난다. 이런 건물의 낡기에 따라서 같은 유형의 도시에서 차별화된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능들도 탑재하고 있다. 심즈를 플레이하다보면 심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의 화면이 궁금해질 때가 있어 자주 들여다 보곤 했다. 실제로 '동물의 숲'에서도 모니터 화면에서 디테일을 살리는 것에 집중한 것을 볼 수 있다. 어쩔 때는 캡처 후 확대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팬들의 니즈를 파악했던 것일까. 조이가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할때 따로 모니터를 확대해서 보여준다. 이것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이다.

퀘스트도 디테일하게 설정되어 있다. 가족을 생성할때 주어지는 특성에 따라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진다. 이는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너무 방대한 퀘스트를 다 인지하기도 어렵고, 캐릭터가 타로카드를 보거나 인생4컷을 찍고싶다고 하지만 어디서 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공략을 찾아가면서 플레이하는 묘미도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심 내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의 디테일이다. 친해진 마을 주민으로부터 문자 메세지를 주고받을 때 실제로 문제를 주고받은 것 마냥 자세해서 진짜 문자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이웃으로 부터 택배를 선물받을때 '배송위치: 집 앞'이라는 문자를 받는 것은 현실을 매우 반영한 콘셉트였다. 아직 앱 기능은 개발 단계에 있어서 모든 기능을 사용해보지 못했지만 디테일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다른 이성에게 작업을 거는 동안 기존의 친한 이성에게 안부 문자가 오는 디테일도 놀라웠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면 무엇일까.


'직업 기능'에서도 차별점이 있었다. '심즈' 시리즈는 심이 일을 나가면 통근차를 타고 사라진 후 메세지를 통해 이벤트들이 등장하지만 '인조이'는 조이의 근무지까지 쫓아가서 케어해줘야 한다. 출근을 하면 출근복으로 갈아입고 업무가 주어진다. 주어진 업무를 자동으로도 완수할 수 있고 내가 직접 해볼 수도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조이는 출근하면서 점심밥은 연속해서 두번이나 먹고 디저트까지 알차게 먹었다. 손님들과 대화도 하고 매대에 있는 음료도 마셨다.


'인조이'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고양이가 컨텐츠로도 등장한다. '냥 스토어'는 받은 포인트로 욕구 해소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일종의 치트키 기능이다. 출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샤워를 하지 못했을때, 혹은 잠재우는 시간이 아까울때 쓸 수 있다. 플레이하다가 모르거나 막히는 부분도 이 고양이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데, 즉각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았다.

다소 식상해진 '심즈'의 모토를 그대로 답습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심즈의 포멧을 따라가는 것은 다소 아쉽다. 사물을 여러번 이용하면 능력치가 오르는 콘셉트는 MMORPG에서도 이미 고착화되어있지만 새로운 맛은 없었다. 글을 써서 판매한다거나 작곡을 해서 판매하는 것도 기존 '심즈'에서도 쭉 있었던 기능들이다. 사물과의 인터렉션도 기분에 따라 사용방법이 조금 다르게 적용된 것도 심즈 유저 입장에서는 식상한 기능들이다.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이모지로 대체하는 등의 대화로 차별점을 두는 것은 좋았지만 대화 형식이 여전히 '심즈'의 그것과 매우 동일하다. 단, 스킨쉽의 경우 '심즈' 시리즈에서는 심의 매력과 상관없이 몇번의 대화만으로도 간단한 뽀뽀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인조이'에서는 가차없었다. 꽤 친했다고 생각한 상대에게 이마 뽀뽀를 시도했으나 두번이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주민들의 특성을 한눈에 쉽게 정리해서 볼 수 있는 점은 매우 편했다. 전체적으로 '심즈'시리즈 대비 UI가 많이 정돈 되어있는 점을 볼 수 있었다. 한국 개발사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성향에 맞춰져서 제작된 점은 매우 큰 장점이라 볼 수 있다.

'인조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능중 AI 인식 기능을 이용한 연동 컨텐츠가 있다. 내 얼굴을 실시간으로 연동 시켜 조이를 움직일 수 있는 '페이셜 캡처' 기능과 사진과 영상을 인식시켜 조이를 움직일 수 있는 '모션 캡처'기능이 있다. 사진 유형에 따라 손가락 등에서는 아직 디테일함이 더 필요해보였다. 실시간 얼굴 인식 기능도 아이폰 전용 앱 '라이브 링크 페이스(Live Link Face)'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모바일에서 제약이 있다. 3D 프린팅을 통해 가구를 직접 만드는 기능들도 있지만 아직 인식율에선 개선이 더 필요해 보였다.

심즈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은 늘 있어왔다. 막강한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는 게임들도 많이 출시되어 왔다. 그렇지만 '심즈'의 인지도를 흔들 수 없었다. 그나마 '동물의 숲'이 거의 대등할정도의 인기를 구가하지만 자유도의 차이와 플랫폼의 한계가 있어 '심즈'와는 결이 다르다. '인조이'는 이런 심즈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고 추가로 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심즈' 유저 입장에서 '심즈'의 인기 요인 중 두 가지는 '개그 코드'와 '플레이 환경'을 들 수 있다. 심즈의 아이템명이나 문장에서는 현지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 것을 볼 수 있다. 인기 있는 K-POP의 가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갑자기 집에 도둑이 든다거나 심이 죽으면 저승사자와 협상을 해서 다시 살릴 수도 있었다. 광대 액자를 걸어두면 밤중에 진짜 광대가 나타나서 울다가 사라지는 이스터 에그도 있었다. 기자가 '심즈'를 플레이할때 애정이 있는 심이 죽어 묻어두었더니 유령으로 나타나서 손녀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이처럼 '심즈' 시리즈에서는 소소한 휴머니즘과 유머가 있었다. 인조이에도 이러한 느낌 있는 이스터 에그를 좀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 아직 찾은 것이 없다. 꼭 찾아서 별도의 콘텐츠로 올리도록 하겠다.
'인조이'의 높은 퀄리티가 마냥 좋은가 하면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여타 모든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컴퓨터이 사양이 좋아야하지만 심즈 시리즈는 보급형 노트북 사양에서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했다. 그래서 일반 학생들도 접근성이 높았고 '심즈 4' 시리즈는 i5/8G/GTX660 정도의 사양으로도 미어터지는 Mod 환경 속에서 원활하게 플레이가 가능했다.
기자가 '인조이'를 플레이한 i7/16G/RTX4060 환경에서는 높은 그래픽을 즐기기 어려웠다. 커스터마이징 단계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그래픽을 보여줬지만 실제 플레이 환경에서는 그래픽 저하와 프레임 저하가 느껴졌다. 요즘 그래픽 카드의 판매 가격을 생각하면 일반 가정집에서 플레이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스타듀벨리'와 같은 비교적 저사양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인기를 끌고있었던 이유가.

그렇지만 '인조이'의 강점은 한국 고유의 게임이기 때문에 UI 디자인과 커스터마이징 쪽에서 '심즈' 시리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세를 보여주고 있다. '인조이 - 캔버스(inZOI - CANVAS)'라는 자체 오픈 커뮤니티를 만들어 플레이어들끼리 커스텀 조이와 건축물을 공유할 수 있고 웹서비스로도 제공하고 있어서 어렵게 게임에 접속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커스텀을 구경할 수 있다. 이는 타 유저의 커스텀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국내 메타버스 앱 '제페토'와 유사하다. 그동안 '심즈'의 운영방식은 하나의 구심점을 만들지 못해 전 세계 각국의 팬 커뮤니티가 분산되어 운영되었다면 '인조이'는 이것을 하나로 모아 단일 커뮤니티를 구축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조이'에 'CC템(Custom Contents Item)'이나 'Mod'와 같은 커스텀이 가능할지, 'Motherlode'와 같은 국민 치트키가 만들어질지, 아직 많은 의견들이 분분하다. 제작사는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아이템을 게임 내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고 있는 등 여러모로 대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되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이제 '심즈 하셨습니다.'가 아니라 '인조이 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게 될까? '심즈 덕후'에게 '인조이'는 너무 익숙하면서도 다른 신기한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