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해넘이 행사 대부분 취소…연말 분위기 실종에 거리도 한산
"새해엔 평온" "정치·사회 안정되길"…그래도 희망 품는 시민들
"새해엔 평온" "정치·사회 안정되길"…그래도 희망 품는 시민들
(전국종합=연합뉴스) 여느 때라면 묵은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떴을 12월 31일, 전국의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2024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다 세밑에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영향으로 평소 축제 분위기에서 열렸던 해넘이 행사는 대부분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됐다.
국가 애도기간 선포 등으로 도심 거리도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시민들은 2025년은 큰 혼란이나 사고 없이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소망했다.
◇ 지자체 주최 해넘이 행사 대부분 최소…일부는 대폭 축소
매년 마지막 날 해넘이 명소마다 자치단체 주최로 열리던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전북지역 시·군이 주관하는 해맞이, 해넘이 행사는 올해 모두 취소됐다.
취소된 행사는 전주 제야축제, 군산 탁류길 해돋이 문화제, 익산 제야의 종 타종행사, 남원 덕음산 해맞이 행사, 김제 을사년 해맞이 행사 등 12건이다.
경기 화성시는 인구 100만명을 넘어서 새해부터 특례시가 되는 것을 기념해 애초 31일 오후 9시부터 정조효공원과 용주사에서 송년 제야 행사 '화성특례시 START 0시 0분' 행사를 열 계획이었지만 전면 취소했다.
부산시는 31일 밤부터 1월 1일 새벽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시민의 종 타종 행사를 취소했다.
해운대구는 31일 밤 11시부터 2시간 동안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기로 했던 2025 카운트다운 행사를, 수영구는 같은 날 예정했던 광안리 드론 라이트쇼 카운트다운 특별공연을 취소했다.
충남 태안군은 해넘이·해맞이 행사를 취소하고, '2025 태안 방문의 해' 선포식도 잠정 연기했다.
경남에서는 31일 자정 무렵 타종행사를 준비한 창원시, 진주시, 통영시, 사천시, 김해시, 양산시 등 6개 시가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충북도는 31일 밤 청주예술의전당 천년각 일원에서 열기로 했던 '새해맞이 희망축제'를 취소했고, 인천에서는 강화군 고려궁지 제야의 종 타종 행사와 일몰 명소인 정서진 해넘이 행사를 열지 않았다.
제주도는 31일부터 이틀간 예정됐던 제32회 성산일출축제를 취소했다.
대구시와 울산시는 각각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울산대공원에서 개최하려던 제야의종 타종식을 취소했다.
일부 행사는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한 채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시민들을 맞았다.
전북에서는 민간이 주최하는 임실 국사봉 해맞이 축제, 고창 고산 해맞이 행사, 고창 장사산 해맞이 행사 등 3개 행사가 축소됐다.
경남 남해군은 31일 오후 상주면 은모래비치에서 열린 '상주 해넘이·해맞이 축제'를 축소했다. 남해군은 밴드·가수 공연이나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을 취소하고, 먹거리 판매 부스 운영과 유자차·떡국 나눔 행사만 진행했다.
경남 밀양시, 함양군, 합천군은 타종 행사를 축소하고 음악 공연은 모두 취소했다.
◇ "여느 해보다 다사다난…새해엔 좋은 일만 있길"
탄핵 정국 속 대형 참사가 겹치면서 관광 명소나 도심 거리에서조차 연말 분위기가 실종됐지만, 시민들은 엄숙함 속에서도 새해 희망에 대한 기대만큼은 놓지 않았다.
31일 오후 동해안 해맞이 명소로 손꼽히는 강원 속초 해수욕장 인근은 다소 한산했다. 일부 관광객은 해맞이 명소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속초시민 이진훈(23)씨는 "제주항공 참사가 가까운 지역에서 일어난 사고는 아니지만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며 "올해는 친구들과 조용하게 연말연시를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의 번화가인 팔달구 인계동 거리에는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오가는 인파가 적어 한산했다.
이모(42) 씨는 "직장이 화성이지만 볼일이 있어서 수원에 와서 점심을 먹으려고 인계동에 왔는데 예전에 왔을 때보다 확실히 사람이 없다"며 "비상계엄에 항공기 참사까지 연말을 즐길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저녁이면 북적이던 전북도청 앞 신시가지 거리에도 손님 발길이 뜸했다.
전주 시민 강모(36)씨는 "국가 애도기간으로 연말연시 분위기가 사라져 예정된 약속을 취소했다"며 "올해 연말 참 많은 일이 벌어져 우울한데, 새해에는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고 희망이 깃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를 대표하는 육거리시장도 한산했다.
유현모 청주육거리종합시장 상인회장은 "요즘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다 보니 경기가 상당히 얼어붙은 게 사실"이라며 "새해에는 상황이 나아져 지금보다 장사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시 거리에는 연말을 맞아 조기 퇴근한 시민들이 케이크와 음식을 포장해 조용히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의정부시민 이모(58) 씨는 "올해는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초유의 사건이 많았던 한 해였다"며 "내년에는 이런 시련을 딛고 평온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해맞이 명소인 한경면 수월봉과 차귀도 등에는 가라앉은 분위기 속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도민과 관광객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제주도민 김근생(61)씨는 "조용히 올해 마지막 날을 가족과 마무리하고, 내일은 집 근처 오름에 올라가 새해를 맞이할 계획"이라며 "올해처럼 우리나라가 다사다난했던 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러 사건과 어려움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 남구 앞산해넘이 전망대에서는 시민들이 두 손을 모으거나 외투에 손을 넣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봤다.
두 딸과 함께 해넘이 구경을 온 김수전(44)씨는 "가족들과 올해를 잘 정리하고 보내주기 위해서 나왔다"며 "매년 좋지 않은 일들도 많은데 내년에는 꼭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한다"고 새해 바람을 전했다.
(임채두 최종호 박성제 김준호 이정훈 김형우 심민규 김상연 류호준 백나용 박세진 허광무 기자)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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