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명 운집했던 구유광장 인파 수백명 그쳐…성지 찾는 발길도 뚝
피자발라 추기경 "이렇게 슬픈 성탄절은 올해가 마지막이 돼야"
'아사드 독재' 붕괴된 시리아는 다시 성탄절 축제 분위기
피자발라 추기경 "이렇게 슬픈 성탄절은 올해가 마지막이 돼야"
'아사드 독재' 붕괴된 시리아는 다시 성탄절 축제 분위기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기독교 대축일이자 세계인들의 축제인 성탄절이 다가왔지만 예수의 탄생지인 요르단강 서안 도시 베들레헴은 올해도 트리를 세우지 못하는 등 침울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2년째 이어지고 있어서다.
24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AP 통신 등에 따르면 베들레헴 당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성탄 트리나 화려한 장식, 떠들썩한 축하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순례객과 여행객도 급감하면서 예년이라면 발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을 구유 광장(Manger Square)을 비롯한 시내 명소와 시장들도 한산하기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수입의 거의 70%를 관광에 의존하는 베들레헴 경제에 심각한 타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관광부의 지리에스 쿰시예 대변인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직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베들레헴을 찾는 방문객이 연간 200만명 안팎이었으나, 올해는 10만명도 채 되지 않는 숫자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톤 살만 베들레헴 시장은 "올해는 기쁨을 제한하기로 했다"면서 "성탄절은 신앙의 축제다. 우리는 신께 우리가 직면한 수난을 끝내달라고 기도하고 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인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집전하는 특별미사는 예정대로 진행됐으나, 구유광장에 모인 순례객과 주민의 수는 수만명 수준이었던 예년과 달리 수백명에 그쳤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전쟁터가 된 가자지구에서 막 돌아왔다면서 "모든게 파괴되고 굶주림과 재앙이 닥쳤다. 하지만 '생명'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들 역시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슬픈 성탄절은 올해가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마스는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해 약 1천200명의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을 살해하고 250여명을 납치해 인질로 삼았다.
이에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개시해 가자지구를 사실상 고립시킨 채 무차별 폭격하면서 4만5천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폭력사태가 빈발, 현재까지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AFP 통신은 가자지구에서도 수백명의 현지 기독교인이 성탄 전야 미사를 올리고 전쟁 종식을 기도했다고 전했다.
12세기에 지어진 가자시티의 그리스 정교회 성당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에서 피란생활을 해 왔다는 주민 조지 알-사이그는 "올해 성탄절에는 죽음과 파괴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기쁨도, 축제 분위기도 없다. 우리는 다음 명절까지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바샤르 알아사드가 이끄는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14년 가까이 이어졌던 내전이 종식된 시리아에서도 성탄 미사가 집전됐다.
'인간 도살장'이란 악명을 지닌 세드나야 교도소가 있었던 시리아 세드나야 지역에선 많은 주민들이 오래된 수도원 주변에 모여 트리를 밝히고 음악을 연주하며 평화 회복을 자축했다.
이곳에 모인 주민 중 한 명인 후삼 사데는 AP 통신 인터뷰에서 "올해는 다르다. 여기에는 행복과 승리, 시리아와 그리스도의 새로운 탄생이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는 다수종파인 이슬람 수니파와 이슬람 시아파, 기독교, 드루즈파, 그리스 정교회 등이 공존하는 다종교·다민족 국가다.
아사드를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세운 반군 세력의 주축인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은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누스라 전선의 후신이지만, 소수종교 보호 등을 공언하며 민족·종파간 화합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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