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눈사람들, 눈사람들' 만장일치 대상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림 문학상 첫 번째 대상을 받아 책임감이 커요. 앞으로도 다루고 싶은 것을 용기있게 택하겠지만 주저하면서 써 나가고 싶어요."
출판사 열림원이 올해 신설한 '제1회 림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성수진(37) 작가는 19일 서울 종로구 문화공간 길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성 작가에게 심사위원 만장일치 대상을 안긴 단편소설 '눈사람들, 눈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낯선 곳에 도착하고, 또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화재 사고로 인연을 맺은 주인공 수현과 연지는 대전 원도심을 산책하며 옛 도청 청사 건물 옆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숲에 둥지를 튼 백로 무리를 발견한다. 시간이 흘러 청사 건물이 헐리고, 숲과 함께 백로가 떠나면서 두 주인공도 이별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성 작가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며 "청사가 철거되고 백로가 떠나면서 느낀 상실감을 소설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대 60m까지 자라는 히말라야시다 숲에 수십마리의 백로 무리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대표 이미지다. 그 모습이 마치 눈사람이 나무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연지의 대사를 따 작품 제목도 '눈사람들, 눈사람들'로 지었다.
성 작가는 "히말라야시다는 가지는 치렁치렁 밑으로 처져있지만, 줄기는 굉장히 하늘 높게 뻗어있다"며 "백로들이 그 나무에만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제게 문학적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한 문체로 써온 그는 자신의 작품이 뚜렷한 장르적 경향을 보이는 최근 문학계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짚었다. 그는 "이번 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경계 없음'과 '다양성', '펼쳐짐'을 모티브로 신설된 림 문학상은 기존 문학상과는 달리 응모 자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2010년대 이후 문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등단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반성 차원이다. 이런 취지를 반영하듯 올해 첫 응모에는 총 447명의 작가가 894편의 소설을 제출했다.
성 작가 외에 '포도알만큼의 거짓'을 쓴 이돌별 작가가 우수상을 받았고, '우주 순례'의 고하나와 '얼얼한 밤'의 이서현, '날아갈 수 있습니다'의 장진영 작가가 가작에 선정됐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안윤 작가는 "숱한 밤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하고자 홀로 책상 앞에서 골몰했을 다섯 분의 작가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며 "수상과 함께 남몰래 품은 다짐이 있다면 닳지 않게 잘 간직해 두기를 바란다"고 축하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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