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고통이고 쾌락이다…김사과 소설집 '하이라이프'
연합뉴스
입력 2024-03-29 13:45:17 수정 2024-03-29 13: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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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김사과 작가의 단편집 '하이라이프'의 표제작에는 코카인을 쉴 새 없이 흡입하고 도시를 배회하는 상류층이 등장한다. 제목 '하이라이프'(Highlife)는 상류층의 삶을 뜻하는 동시에, 마약으로 환각에 빠진 상태(high)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약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끊임없이 소비를 이어가며 도시를 떠도는 중독자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는 자신을 이 도시의 진정한 일꾼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시시각각 부지런히 꽤 많은 돈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첨단 소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따갑게 꼬집는 대목이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다른 소설 '두 정원 이야기'도 이런 대도시 중산층이 품은 욕망의 허위의식을 꼬집기는 마찬가지다.

이 작품엔 같은 고급 아파트에 사는 김은영과 윤은영이라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이 같은 이 둘은 하나는 '절약의 화신'이지만 다른 한 명은 '소비의 화신'이라는 점이 극명한 차이다. 그런데 절약과 소비는 과연 차이일까 아니면 결국엔 같은 말일까.

값비싼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고 다니는 윤은영은 '에코주의'를 자신의 핵심 가치로 선전하는 "가장 세련된 2020년대 인간"이다. 김은영은 그런 윤은영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지만,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가 사회적 계급의 징표가 돼버린 사회에서 고급 아파트에 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 그녀는 과연 윤은영과 다를 게 뭐냐고 작가는 묻는다.

이처럼 김사과의 신작 단편집 '하이라이프'에는 첨단 자본주의에 포획당한 현대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개성 있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수록됐다.

인스타그램 세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100479♡', 쇼핑몰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를 풍자한 '몰보이' 등 흥미로운 소재들은 페이지를 빨리 넘기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단편집에 공통으로 흐르는 개념을 추출하자면 자본주의 외에 '도시'를 꼽을 수 있겠다.

도시는 김사과 소설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큼 중요한 소재다. 작가는 이 소설집의 첫 수록작인 '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에서 도시를 이렇게 규정한다.

"결국 도시란 영원히 이어지는 실험을 위한 장소. 이 끝없는 실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중략) 그러니까 이 고통스러운 철창은 쾌락으로 가득한 천국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시=고통=쾌락"이라는 등식도 덧붙인다.

고통과 쾌락이 한 몸이 된 복잡미묘한 세계가 '하이라이프' 수록작들이 그려낸 현대 도시의 초상이겠다.

창비. 268쪽.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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