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고원 역…"코믹 분위기 살리려 무게감 걷어내고 연기"
11년 축구선수 생활 정리하고 모델 거쳐 배우로…"연기할 때 행복"
11년 축구선수 생활 정리하고 모델 거쳐 배우로…"연기할 때 행복"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김우진 인턴기자 = '옹졸한 심술쟁이 왕자', tvN 주말드라마 '환혼'의 대호국 세자 고원에 대한 소개다.
권력을 쥔 세자가 옹졸한데다 심술궂기까지 하다니 '밉상' 캐릭터가 분명해 보이는데, 어째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귀여운 매력이 어디선가 새어 나온다. 고원은 근엄한 표정으로 한껏 무게를 잡고 있다가 작은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냉철한 말투로 상황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리고는 머쓱해 한다.
고원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담아낸 배우 신승호를 '환혼' 시즌1 종영을 앞둔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환혼' 시즌2와 드라마 '약한영웅' 촬영을 병행하고 있다는 신승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환혼'은 기획 단계부터 시즌1과 시즌2로 나눠 제작됐다. 시즌1은 28일 막을 내렸다.
신승호는 고원이 얄밉기도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그는 "초반에는 악역처럼 보일 수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적이고, 긍정적으로 비친다"며 "옹졸하고 심술쟁이긴 한데, 어느 순간 심술을 부렸던 주변 인물들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적인 면이 있다. 그런 부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본인이 취하고 싶은 것들을 취할 수도 있을 텐데, 고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어떨 때는 바보 같기도 하고, 겁도 많은 귀여운 인물"이라고 말했다.
신승호는 고원을 연기하면서 힘을 빼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키 187㎝에 체격이 큰 편이어서 외적으로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다 보니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이 숙제였다고 했다.
"연기자로서 제가 가진 외적인 이미지가 원래 무거운 걸 알고 있어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죠. 그런데 제가 생각한 고원은 위엄있고, 야망 있는 기존의 세자들과는 달랐거든요. 그래서 (무게감을) 걷어내려고 노력했죠.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 많이 발랄해요.(웃음)"
'환혼'은 판타지 사극에 로맨스, 액션, 코믹이 뒤섞인 복합장르의 작품인데, 신승호는 코믹 연기가 재밌기도 했고 욕심도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랑을 부르는 음양옥을 나눠 가진 탓에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고원과 장씨 집안의 도령 장욱(이재욱)의 원치 않은 브로맨스를 명장면으로 꼽았다.
신승호는 "늦은 나이에 연기를 배우게 됐는데, 연기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코믹 연기였다"며 "그런데 그동안 고원처럼 자유롭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없었다. 고원을 통해 코믹 연기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원이 등장했을 때 극의 분위기가 확 밝아지고, 웃기고 재밌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제 욕심에 애드리브도 몇 번 했는데, 작가님께서 너무 재밌다고 하셔서 장면마다 애드리브를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고원이 무덕이(정소민)의 송림 하인 선발 시험을 도우려고 서율(황현민), 박당구(유인수)와 '옷에 든 먹물은 어떻게 지워야 하나'란 문제의 답을 궁리할 때 "먹물이 들면 그냥 버려야지, 뭘 지우냐"라고 말한 것도 애드리브라고 했다.
사실 신승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 선수였다. 11년간 축구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가 그만뒀다. "축구 선수로서 삶이 더는 행복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시기, 과거에 몇 차례 제안을 받았던 모델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해 여름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섰고, 겨울에는 SBS 슈퍼모델로 발탁됐다고 했다.
"1년도 안 돼 패션모델로 이룰 수 있는 커리어들을 이루고 나니 상실감이 크게 왔어요. 오랜 시간 노력해온 축구선수로서 제 꿈은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모델로서 커리어가 금방 이뤄지니, 이제 뭘 해야 하나 싶었죠. 그때 모델인 박둘선 선배가 연기를 해보라며 학원을 끊어주셨어요."
신승호는 배우가 되겠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등 떠밀듯 연기 학원에 갔는데, 수강생들 사이에서 처음 해본 연기에 "어? 재밌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는 "배우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해서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연기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며 "그렇게 열심히 배우다 보니 배우로서도 꿈이 생기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JTBC 드라마 '열여덞의 순간'(2019)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인 반장 마휘영 역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D.P.'(2021)에서는 후임 병사들을 괴롭히는 악마 같은 말년병장 황장수 역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소름 끼치는 악랄한 연기로 악역을 소화하며 신예답지 않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신승호는 "칭찬이 감사하지만, 아직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저 제가 가진 걸 표현할 줄 아는 정도인데, 여러 경험을 하고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하다 보니 그런 부분이 잘 표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축구를 그만둔 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하는 동안 만족했고, 지금은 연기하는 게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지금 더 열심히 임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 연기를 궁금해하는, 찾아보고 싶은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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