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정무관 "한국인, 가혹한 환경서 노동"…실행위원장 "세계유산 기뻐"
日언론도 "강제성 누락·추도 대상 애매" 지적…한국, 내일 별도 추도식 개최
日언론도 "강제성 누락·추도 대상 애매" 지적…한국, 내일 별도 추도식 개최
(사도[일본]·도쿄=연합뉴스) 박성진 박상현 특파원 =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노역했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에서 24일 한국과 일본의 불협화음 속에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주최로 사실상 '반쪽짜리' 추도식이 열렸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이날 오후 1시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자국 인사만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했다.
일본 중앙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을 비롯해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 와타나베 류고 사도시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단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추도식에는 약 100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한국 측 불참으로 약 30개 좌석이 비어 '반쪽 행사'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행사는 묵념, 추도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으며 추도사는 한국 측 불참으로 이쿠이나 정무관 등 일본 측 인사만 낭독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1940년대 사도광산에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가 있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 하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종전(終戰)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감스럽지만,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며 사도광산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난 희생자를 애도했다.
다만 그는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강제동원' 등 강제성과 관련된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나카노 고 실행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사도광산이 세계의 보물로 인정된 것을 보고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큰 기쁨"이라며 "광산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의 활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유산 등재 기념 행사가 아닌 노동자 추도식임에도 '기쁨'이나 '활약'이라는 단어를 동원, 등재 의미를 부각한 셈이다.
추도식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매년 열기로 한국에 약속한 조치로 이번이 첫 행사였다.
애초 한국 유족과 한국 정부 관계자 등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지만, 한일 양국은 행사 명칭과 일본 정부 참석자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여기에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내에서 논란이 일었고 한국 정부는 전날 전격적으로 불참을 결정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정무관이 일본 정부 대표를 맡은 것은 한국 유족들을 모욕하는 부적절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일본 측 대응에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견해도 나왔다.
이와 관련,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식이 끝난 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등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답하지 않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와타나베 시장은 추도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측 보이콧으로 추도식이 '반쪽 행사'로 치러진 데 대해 "이런 결과가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한국 측이 추도식에 의문을 표하며 참가하지 않아 향후 화근을 남겼다"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을 언급하지 않고 추도 대상도 '모든 노동자'로 애매했으며 노동자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 유족 9명은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와 함께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로 자체 추도식을 열 예정이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구리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 무렵 1천5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했다.
sungjinpark@yna.co.kr,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