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조각가 최종태 "아름다움에는 정답이 없어"
연합뉴스
입력 2021-11-17 07:30:00 수정 2021-11-17 07:30:00
김종영미술관 개인전 '구순을 사는 이야기' 개막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김종영미술관에서 개인전 여는 조각가 최종태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중학교 시절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고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러 인간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산 세상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나이로 구순이 된 조각가 최종태(89)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참혹한 비극과 국민의 항거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는 혼돈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담아 평생 사람 조각, 특히 여인상을 주로 만들었다.

원로작가 초대전 '최종태, 구순을 사는 이야기'가 개막한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삶을 예술에서 떼어놓을 수 없어서 인물, 인간을 다뤘다"며 "내 작품은 나의 인생 이야기"라고 말했다.

작가는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도 지냈지만, 종교의 벽을 넘어 다양한 종교 조각도 제작했다. 특히 반가사유상 등 한국 불교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선보였다.

최종태는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가 반가사유상을 보고 극찬했는데, 나 역시 반가사유상의 맑고 깨끗함, 영원한 평화를 지향한다"며 "거기에 도달했으면 좋겠지만 너무 큰 욕심이고, 다만 지금도 그쪽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태 개인전 전경 [김종영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32년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53년 '문학세계'에서 김종영의 작품을 보고 감동해 조각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19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김종영의 가르침을 받았고, 졸업 후 서울대 교수를 지냈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2002년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김종영미술관장도 맡았다.

최종태는 "예술을 하면서 스승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김종영, 장욱진 선생에게서 벗어나는 데 20년이 더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다 있으면서 다 없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며 "스승뿐 아니고 세계미술사가 다 내 작품 안에 있어야 하지만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스승 김종영은 일찌감치 서구 추상미술을 받아들인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이다. 장욱진은 서양화가지만 동양화처럼 토속적인 작품을 그렸다. 조각가 가운데에는 콩스탕탱 브랑쿠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영향을 받았다.

최종태는 "아무리 벗어나고 피하려고 해도 안 됐는데, 그분들의 작업을 이해하니 자유롭게 됐다"며 "미술사를 다 소화하고 극복해서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 머릿속이 조용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김종영미술관에서 개인전 여는 조각가 최종태


미대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조각을 시작한 지 70년 가까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1971년 약 100일간 일본,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며 "미켈란젤로, 비너스 등을 봐도 감격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기둥만 남은 아크로폴리스 신전에서 가슴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느끼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과 예술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며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듯이 예술도 정답이 없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조각과 판화, 드로잉 등 77점을 선보인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최종태의 작품에는 따뜻함과 성스러움이 공존한다. 날카롭게 각지지 않고 둥근 선이 두드러지는 목조 조각에는 단청처럼 곱게 색을 입혔다.

최종태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내 작품의 얼굴이 요즘 좀 밝아졌는데, 그전에는 굉장히 어두웠다"며 "어둡게 살았는데 밝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깜깜한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작업을 시작하면 하루 10시간씩 매달린다는 그는 "일을 할 때는 청년이고 안 할 때는 환자"라고 웃으며 "새벽에 일찍 잠이 깨면 어제 하던 작업이 생각나 참지 못하고 작업실로 간다. 그렇게 작업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31일까지.

doub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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