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그린스펀, 美경제황금기 이끈 '경제대통령'…거품방치 비판도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22일(현지시간) 타계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98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20년 가까이 미국의 중앙은행을 이끌며 이 시기 미국 경제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여한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다만 그가 보인 시장의 자율조정 능력 대한 강한 신뢰와 그에 맞물려 이뤄진 규제완화 정책은 2007∼2008년 금융위기와 대침체(Great Recession)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 노련한 통화정책 운용…경제안정 이끌며 '거장' 칭호
1987년 폴 볼커의 뒤를 이어 연준 의장에 오른 그린스펀은 노련한 통화정책 운용으로 재임 기간 미국 경제의 성장세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그린스펀의 부고 기사 제목에서 그를 '통화정책의 거장'이라고 지칭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연준 의장으로서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계 인사가 돼 거대하고 복잡한 미국 경제라는 기계가 최선의 상태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연주되도록 조율해나갔다"라고 언급했다.
복잡하고 거대한 미국 경제를 마치 오케스트라의 거장 지휘자처럼 세심하게 조율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그의 재임 기간 대부분은 번영의 시기와 맞물려 있었으며, 냉전 이후 승리를 거둔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 잡았다"라고 평가했다.
연준의 통화정책 소통 방식 변화도 통화정책 안정성에 기여했다고 여겨진다.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결정 후 공개적으로 정책 결정문(성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그린스펀 재임 시기인 1994년이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연준은 통화정책 변경 결과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월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의 공개시장운영 업무를 통해 정책 변화를 추정해야 했다.

◇ '그린스펀 풋'으로 위기 때마다 구원…韓 외환위기 때도 막후대응
그린스펀 체제에서 연준은 몇 차례 금융시장 혼란을 발 빠른 대응으로 관리하며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해 오늘날 '연준 풋'이란 용어를 낳게 하기도 했다.
증시가 폭락하거나 금융시장에 위기 조짐이 올 때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나 강도 높은 유동성 공급 정책을 펼쳐 시장을 구제해줬고, 이 때문에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란 말이 생겼다.
그린스펀이 위기 때마다 구원자로 나서줄 것이란 믿음이 투자자들 사이에 각인된 탓이다. '풋'(Put)이란 시장 하락 시 투자손실을 방어해주는 '풋 옵션'을 말한다.
그의 신속하고 과감한 시장 대응책은 취임 초반부터 나왔다.
1987년 10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동안 무려 22.6% 폭락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블랙 먼데이' 사태가 의장 취임 후 불과 두 달 만에 발생하자, 그린스펀은 과감한 유동성 공급 확약에 나서며 시장이 신속하게 평온을 되찾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거장의 통제력'이 가장 완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 당시 깜짝 금리 인하로 대응하며 글로벌 신용경색 확산을 막았다.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 당시에도 그린스펀은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과 함께 막후에서 위기 전염 방어를 위해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패키지 발표 이후에도 1997년 말 위기 사태가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 당국은 한국 정부와 협의해 IMF 구제금융의 조기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와 아울러 미국과 주요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한국 기업 및 금융기관 대상 단기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줄 것을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뉴욕 연은은 199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월가 주요 은행과 회의를 소집한 이후 미국 주요 은행들은 한국의 단기 외채 만기 연장에 동의했고, 이후 연준은 몇달 간 단기 위주였던 대출 만기를 중기로 전환하는 작업을 감독했다.
이 같은 단기 외채 만기 연장 및 재구조화는 1997년 말 한국이 국가 부도 위기를 넘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 방치로 금융위기 불씨 방치 비판도
그린스펀에 대한 평가는 그의 퇴임 후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그린스펀은 1996년 미국의 주식시장이 기술주를 중심으로 매우 투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시장에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았고, 이후 뉴욕증시는 3년 넘게 더 오르며 '닷컴 버블'로 이어졌다.
거품 붕괴로 뉴욕증시는 큰 혼란을 겪었지만, 과잉 투자 문제가 심각했던 기술 영역을 제외하면 미국 경제 전반의 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닷컴 버블 붕괴가 경제 전반에 큰 흔적을 남기지 않자 그린스펀은 거품이 터졌을 때의 피해 완화에 집중하는 자신의 정책이 옳았다고 느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자율적인 균형에 대한 그린스펀의 믿음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위험한 대출 관행에 대한 느슨한 감독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린스펀이 2006년 1월 퇴임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경제는 건실했지만, 주택시장이 둔화하면서 모기지 연체율이 급격히 늘었고 이는 결국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후 베어스턴스·리먼브러더스 몰락과 같은 금융위기 사태로 번졌다.
WSJ은 "그린스펀의 비판자들은 거품 성장 억제에는 작은 조치만 취하고 사후 정리에는 큰 조치를 취하는 비대칭적인 대응이 오히려 더 많은 위험 감수를 부추겼다고 비판한다"라고 소개했다.
NYT는 "그의 전기 작가인 세버스천 맬러비는 금융안정에 더 큰 비중을 두지 못했다는 점이 그린스펀이 저지른 가장 중대한 실수였고, 그것은 그가 굳이 저지르지 않아도 됐을 실수였다라고 결론지었다"라고 전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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