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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우진엄마들의 공화국, 누가 자존감을 무너트리나

연합뉴스입력
'너, 우리 아이 자존감 떨어트렸어''참교육' 학부모 빌런 역 박지연 [넷플릭스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교권 붕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에는 여러 빌런(악당)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초등학생 아들을 둔 '우진 엄마'(박지연)다. 그는 새내기 담임 교사에게 "받아쓰기 틀린 문제에 빗금 치지 말라" 등 끊임없이 악성 민원을 제기한다.

교사의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고 압박하고, 급기야 맘카페와 SNS에 교사 신상을 올려 아동학대범으로 만들어버린다. 교사를 자살 직전까지 몰아넣는 우진엄마의 명분은 하나다. "우리 아이 자존감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존감은 본래 심리학 용어(self-esteem)로, 자신을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평가하느냐를 뜻한다. 미국 심리학의 선구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저서 '심리학의 원리'(1890년)에서 자존감을 '성공을 기대 수준으로 나눈 값'으로 설명했다. 기대에 비해 성취가 크면 높아지고, 성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낮아진다는 의미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존심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체면을 지키려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려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비판을 공격과 모욕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비판을 받더라도 자책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이른바 근자감이 그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서이초 죽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교단 (서울=연합뉴스) 서이초 순직교사 1주기 추모식에서 이주호 교육부장관 등 교육계 고위 인사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4.7.18 [공동취재]

그런데 우리 교육은 학생의 자존감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든다. 1980년대 말 전교조 운동에서 비롯된 학생인권조례가 그 발단이다. 체벌 금지는 시대의 흐름이었다고는 하나, 그 이면에서 교사의 자존감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로 고려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사는 존경과 예우의 대상인 '선생님'에서 수평적 관계인 '쌤'으로 격하됐다. 훈육은 '학대'로, 평가는 '차별'로 간주된다. 학생이 교사를 부모와 동급인 어른이 아닌 '나이 많은 서비스 제공자' 정도로 여기니, 인성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교사를 향한 폭력을 주저하지 않게 됐다.

정치 역시 다르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타협 대신 굴복을 요구하며, 패배의 원인을 성찰하기보다 음모론에서 찾는다. 심지어 자기 진영 내에서도 감정싸움을 벌인다.

지금 집권 민주당에선 김대중과 노무현을 원류로 하는 '난닝구 대 빽바지' 싸움이 '김민식 대 정청래' 대결로 재발했다. 국민의힘도 친윤과 비윤이 서로를 '배신자', '부정충(부정선거론자)'이라 매도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차기 공천권이지만, 충돌의 내면에는 '내가 중심'이라는 자존감이 도사리고 있다.

'누가 역사의 배신자인가'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갈라진 장동혁과 한동훈. (서울=연합뉴스)

'참교육' 속 우진엄마는 자식의 자존감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교단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 가장 크게 상처받은 이는 우진이었다. 마찬가지로 정치판이 피아 구분 없이 자존심 싸움에 몰두하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극중 우진이처럼 말 없는 국민들이 현실의 우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국민의 처지가 극중 우진이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다. 우진이는 참교육을 당한 엄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숨 쉴 공간이라도 얻었지만, 우리 국민은 정치권의 우진 엄마들에게 둘러싸인 채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에서 표로 정치 빌런들에게 참교육을 실현한다고 하지만, 정작 선거가 끝나면 또 다른 우진 엄마들이 등장해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 더구나 지역주의와 진영, 빈부에 따라 표를 한쪽으로 몰아주는 양태가 갈수록 노골화되는 현실을 보면 국민들 또한 이기적인 우진엄마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갑갑하기 그지없다.

j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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