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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여성시대·문주당·한강새…권력과 의리의 유통기한은

연합뉴스입력
오세훈의 생환, 떨고 있는 서울시청 (서울=연합뉴스) 서울시장 선거 다음날 오세훈 시장이 여름철 대책 특별점검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6.6.4 jieun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염량세태(炎凉世態). 불꽃처럼 뜨겁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세태를 뜻한다. 권세를 쥔 자에게는 모든 것을 바칠 듯 아부하다가도 권세가 기울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인심을 빗댄 말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속담도 같은 이치다.
앞에선 정겹게 웃지만… (서울=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6ㆍ10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 대화하고 있다. 2026.6.10

6·3 지방선거를 전후한 서울시 분위기가 딱 이렇다. '명픽'으로 불리며 압승이 유력시됐던 정원오 후보를 둘러싸고 청사 안팎에선 '여성시대'라는 말이 회자했다. 정 후보의 출신 배경인 여수(고향), 성동구(구청장), 서울시립대(부총학생회장), 전대협(선전부장)의 글자를 딴 조어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의 '성시경'(성균관대·고등고시·경기고)에 빗댄 표현인데, 실제로 관련 인맥들이 선거 캠프 핵심에 포진하면서 앞으로 누가 잘 나가고 누가 물 먹을지 점치는 말들이 오갔다. GTX 철근 누락 문제와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태로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는 인식이 퍼지자 미래 권력을 향한 줄 대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오 시장에게 등 돌린 간부들이 맞닥뜨린 건 오세훈의 생환이었다. '여성시대'를 대비해 줄을 바꾸거나 오 시장을 노골적으로 외면했던 공직자들은 이제 인사 보복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1급 간부들은 일괄사표를 내고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다.

염량세태의 얼굴이 어디 공무원들뿐이겠는가. 오세훈과 한동훈이 승리의 환희를 만끽하던 그 현장, 카메라 앞에 서서 곁을 지키며 환호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불과 얼마 전까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변을 맴돌던 얼굴들이었다." "저 사람 언제 저기로 간 거지?" 싶은 인물들이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방불케 하는 날렵한 코너링으로 권력을 따라 미끄러지듯 옮겨가는 것이 한국 정치의 씁쓸한 풍경이다.

동지애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민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거가 끝나자 유불리에 따라 줄서기가 벌어진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두고 친청(정청래)·친석(김민석)으로 갈라져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이 볼썽 사납다. 친문계를 겨냥한 '문조털래유'와 '문주당', 김민석 총리를 향한 '한강새똥돼주길', '2차 후단협'이란 표현이 진보진영 유튜브 채널에서 거침없이 오간다.

서로를 적대시하며 상대 유튜브 절독 운동까지 벌이는 양측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합집산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주변에서 되풀이되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공직사회의 줄서기 행태를 공직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장부터 말단의 주요 보직까지 대대적인 물갈이가 반복되는 구조에서 공무원 개개인에게 정치적 중립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치권이 인사권으로 공직사회를 길들여 놓고, 그 결과 나타난 줄 대기와 눈치 보기를 공무원 개인의 도덕 문제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권력을 좇아 배신을 밥먹듯 하는 공직자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하는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j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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