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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재탄생] 허물어져가던 빈집들, 학교 살리는 '희망 보금자리'로

연합뉴스입력
남해군 서면 일대 빈집 정비 '남해살이 해랑 주거사업' 성과 4억 투입해 빈집 리모델링…도시민 21명 둥지·초등학교도 활력 보증금 200만·월세 20만원 파격 조건…농어촌 소멸 대응 교과서
장항마을 빈집 정비 후 모습[경남 남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정비 전 방치된 장항마을 빈집[경남 남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해=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도시의 삭막함을 벗어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 수 있는 시골 학교를 찾고 있었는데, 주거 부담까지 덜어준 덕분에 온 가족이 안심하고 내려올 수 있었어요."

지난해 경남 남해군 서면으로 전입한 40대 유씨는 남해살이의 만족감을 이같이 표현했다.

유씨가 정착한 서면 일대에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인 장항마을과 노구마을이 있다.

이곳은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거주하던 어르신이 떠난 뒤 잡초가 무성한 채 흉물로 방치돼 가던 빈집들이 있던 자리였다.

그러던 이곳에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아 허물어져 가던 빈집들이 도시 지역의 젊은 부모와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희망의 보금자리'로 재탄생한 것이다.

7일 남해군에 따르면 군이 추진한 '로컬라이프 남해살이 해랑(海浪) 주거사업'이 폐교 위기에 몰렸던 지역의 작은 학교인 성명초등학교를 살려내는 구원투수 역할을 해내며 농어촌 재생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해랑'은 바다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결이라는 의미다.

단순히 건물을 수리하는 차원을 넘어 남해라는 지역의 정주 인구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그동안 지자체의 빈집 정비사업은 각기 다른 부서에서 제각각 맴도는 경우가 많았다.

남해 성명초등학교[경남 남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군은 '지역 내 방치되는 빈집'과 '인구 감소로 인한 학교 폐교'라는 공통의 소멸 위기를 '학생 유입을 위한 주거 기반 마련'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묶어 부서 간 장벽을 허물었다.

인구청년정책단과 교육협력팀이 손을 잡고 2024년 한 해 동안 총사업비 4억원을 투입해 서면 일대의 빈집들을 전면 리모델링하는 '해랑 주거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대상지 선정부터 철저했다.

전문 용역업체가 서면 일원 22개 마을 전체의 빈집 데이터를 수집한 뒤 건축물·토지대장을 기초로 법적 문제가 없는 곳을 1차로 걸러냈다.

이어 소유주 동의를 거쳐 마을 내 사업 우호도, 거주 쾌적성, 성명초등학교와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구마을 3개소와 장항마을 1개소 등 최종 4개 가구를 확정했다.

하지만 추진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수십 년간 방치된 농어촌 빈집을 쓸 만한 정주 공간으로 되돌리는 일은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 마감 공사에 이르기까지 숱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사업지인 서면 일대가 여수해저터널 건설이라는 대형 호재와 맞물리면서 지가 상승 기대감 탓에 소유주들로부터 7년 장기로 빌릴 수 있는 빈집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 노후한 목조 가옥 자체의 물리적 한계도 있었다.

막상 공사를 위해 빈집 뼈대를 뜯어보니 내부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낡은 목조주택 특성상 단열과 습기를 잡기가 극히 어려웠고, 리모델링 설비를 고정할 내부 벽체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특히 집의 기초가 낮은 경우 습기가 바닥을 통해 쉽게 올라오는 탓에 마당의 흙 높이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등 복잡한 토목 작업이 추가로 동반됐다.

노구마을 빈집 정비 전(왼쪽)과 후의 모습[경남 남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어려움 속에 진행된 사업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주를 희망하는 지역 밖 거주 가구를 대상으로 모집 공고를 내 최종 4가구를 선정했다.

이들은 2025년 신학기 전 입주를 모두 마쳤으며, 올해 현재 기준으로 청년층(20∼46세)과 유·아동을 포함해 총 21명의 새 식구가 남해에 둥지를 틀었다.

이 중 초등학생들은 성명초등학교로 한꺼번에 전·입학하면서 전교생을 손가락으로 꼽던 시골 작은 학교는 단숨에 활력을 되찾았다.

유씨는 "처음에는 낯선 시골 생활에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는데, 주민들이 반겨주시고 학교 프로그램도 알차 만족스럽다"며 "깨끗하게 고쳐진 집에서 아이가 뛰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남해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의 성공 비결은 파격적인 임대 조건과 마을 공동체와 유기적 위탁 관리 시스템에 있다.

군은 빈집당 1억원 안팎의 리모델링 비용을 투입하는 조건으로 빈집 소유주와 7년의 장기 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소유주 입장에서 흉물인 빈집을 완벽하게 고쳐 7년 후 돌려받으니 이득이다.

이렇게 조성된 집은 '관리운영 협약'을 맺어 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입주자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 임대료 2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거주한다.

도시의 비싼 주거비 부담을 덜어내 청년 부모들의 자연스러운 정착을 유도하고 월세 수입으로 공익적 마을 사업 재원을 마련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정주 인구를 넘어 지역에 활력을 주는 생활인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군의 뚝심 있는 정책이 소멸 갈림길에 선 농어촌 지역의 소중한 교과서가 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현장에서 낡은 집을 뜯어고치며 겪은 시행착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단순히 새집을 짓는 것을 넘어 인근 정주 여건 개선 사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home12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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