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사망] 37년간 철권통치, '비극적 운명'으로 마침표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미국의 전격적인 공습에 테헤란의 거처에서 폭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6)는 지난 37년간 신정체제의 정점에 서서 이란을 철권 통치해온 인물이다.
1939년 4월 19일 이란 북동부의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하메네이는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가문의 후손이다. 4살 때부터 이슬람 경전 쿠란을 익혔다고 한다.
그의 이름에는 고위 성직자를 뜻하는 '아야톨라',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후손임을 가리키는 '세예드' 등 호칭이 따라붙는다.
하메네이는 1958년 시아파 성지인 이란 서부 도시 곰으로 이주해 루홀라 호메이니에게서 신학을 배우며 그와 가까워졌고, 함께 정치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시기 레프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존 스타인벡 등 문학에 빠지는가 하면 서구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이슬람주의를 결합하려는 이념적 시도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와 함께 팔레비 왕조의 모하마드 레자 샤(국왕)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6차례 체포됐고, 3년간 추방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1978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일으켰고, 이듬해 팔레비 왕조를 폐지시킨 뒤 이슬람공화국을 세우는 데에 성공했다.
호메이니가 초대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측근인 하메네이도 국방차관에 등용되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슬람공화국이 왕정 때부터 존재한 정규군을 견제하고 신정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감독하는 역할을 한동안 맡기도 했다.

하메네이는 1981년 대통령 모하마드 알리 라자이가 암살당한 뒤 열린 선거에 출마했는데, 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하던 중 녹음기에 숨겨진 폭탄이 터지는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당시 오른팔을 다쳐 못쓰게 됐다.
몇달 뒤 대선에서 97%를 득표하며 3대 대통령이 됐다. 이란의 첫 성직자 출신 대통령이었다.
취임 연설 때 "일탈과 자유주의, 그리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좌파"를 제거 대상으로 천명했다고 한다. 이후 재선에 성공해 1989년까지 재임했다.
호메이니가 1989년 노환으로 숨지자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됐던 하메네이가 뒤를 이어 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이란에서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국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권력의 정점일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신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고지도자는 이란의 대내 정책의 최종 결정·집행 감독권, 각종 선거 승인권뿐 아니라 사법부 수장, 국영 매체 경영진, 대통령·내각의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파트와(종교지도자의 칙령 또는 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릴 수도 있다.
하메네이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충성파를 육성하며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갔다. 또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1982년 창설을 도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더욱 밀착했다.
1997년 이란 대선에서 개혁파 진영의 모하마드 하타미가 승리하자 하메네이는 체재를 지탱하는 이념을 지켜내고자 강압적인 조치를 취하면서도 하타미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9·11 사태 국면에서 당시 하타미 대통령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자 이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를 금지한다는 파트와를 직접 발표했고, 2010년에도 "핵무기를 포함해 화학무기, 생화학 무기와 같은 WMD는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평화적 사용의 핵물질 사용만 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2015년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 타결지은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행을 반대하지 않는 등 대외적으로는 필요에 따라 때때로 유연하게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폈다.
1999년 개혁파 신문 살람이 폐간된 데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 반발하는 시위,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작년 말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누적된 경제난에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하며 시작된 시위가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지자 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한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인 것이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꼴이 됐다.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이란 당국에서는 3천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최대 3만6천500명이 숨졌을 것이라는 추산까지 나왔다.
이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소요사태에 따른 군사개입을 시사하며 핵협상 재개를 종용했고, 미국과 이란의 3차회담이 열린지 이틀 만인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메네이가 폭사했다.
하메네이는 최근 심복인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을 자신의 유고시 권력을 대리할 인물로 지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후계구도가 정리되기 전 IRGC 출신의 강성 인사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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