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사각지대] ③ 정신질환자 특화 일자리·주택…"재활·자립 도와야"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집이나 병원, 시설에 갇혀 지내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혼자 다이소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조차 신기하고 감격스럽습니다."
30대 A씨는 조현병으로 정신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후 집에서 가족과 지내다가 지역사회 전환시설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 자립지원주택에서 거주하며 정신질환 동료지원자로 일하고 있다.
A씨는 병원·집에서의 폐쇄된 생활과 자립 이후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말했다.
"전환시설에서 맨 처음 배운 건 요리하는 법이었어요. 처음에는 시설 선생님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가 차차 혼자 물건을 사게 되는 등 스스로 생활하는 능력을 키우게 됐죠. 지금은 혼자 금융 투자 공부를 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사회 전환시설이란 퇴원했거나 퇴원할 계획이 있는 환자의 안정적인 사회 복귀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주거·생활·사회적응 훈련 등의 단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활시설이다.
A씨는 자립 훈련뿐 아니라 시설의 대인관계 회복 프로그램과 약 복용 교육 등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내가 가진 질환의 증상'과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시설 재활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향상되면서 이들의 반복·장기적인 입원은 개선 과제로 논의돼 왔다. 특히나 강제 입원의 경우는 더 그렇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 등은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정신건강·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당장 입원할 필요가 없는 질환자들이 어떻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가'가 강제입원 제도 개선 이후 논의의 출발점이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내달 6일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 수립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계획안 주요 내용을 공개한다.
정부는 이번 기본계획에서 정책 추진 방향을 '지역사회 기반의 회복지향적 환경 마련 및 사회 통합 촉진', '사람 중심의 정책 추진을 통한 당사자 권익 신장'으로 잡았다.
정책 과제로는 ▲ 지역사회 정신재활서비스 확충 ▲ 맞춤형 고용지원 활성화 ▲ 외래치료지원제도 활성화 ▲ 인권친화적 치료환경 조성 등이 설정됐다.
구체적으로는 지자체가 정신재활시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해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지자체의 통합돌봄 지원 대상에 정신질환자를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정신질환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특화형 일자리를 창출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 내 외래치료 지원을 활성화하는 한편 정신의료기관 대상 격리·강박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주거 자립을 위한 특화 주택도 2030년 100호까지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하경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지역사회 전환시설이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에 대한 대안이며 환자들이 평범한 하루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하 교수 연구팀이 서울·경기 지역 전환시설 7곳의 성과보고서와 이들 기관의 실무자 초점집단면접 결과, 이용자 487명의 현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이용자의 89%가 퇴소 후에도 재입원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94%는 외래 진료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용자의 입소 전·후 평가 결과 정신질환 증상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했으며 삶의 질, 일상생활 기능, 대인관계 능력은 향상됐다.
당사자 자조모임인 '마음사랑'의 김순득 대표는 이에 더해 "전환시설은 가족에게도 '병원과 집 사이를 반복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시설에서의 맞춤형 케어와 전문가 지원이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을 대신해 환자와 가족 간 관계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 A씨는 실제로 "부모님과 집에서 함께 살 때 아버지가 돌봄 스트레스로 불평하거나 물건을 내려치는 등의 행동이 있었고, 그로 인해 너무 힘들고 불편했다"고 토로하며 "전환시설을 거쳐 자립한 후에는 부모님과 포옹이 가능할 정도로 관계가 회복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전환시설은 어디까지나 지역사회 복귀와 자립을 위한 중간 단계로서, 정신질환자들이 입원 대신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외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가 활성화하려는 외래치료지원제도가 바로 그 방편이다. 자·타해 위험으로 강제입원한 이력이 있는 환자에 대해 의료기관·정신건강복지센터·가족 등이 해당 제도를 신청하면 심사 결과에 따라 지자체가 외래치료를 명령하고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외래치료지원은 인지도가 낮을뿐더러 절차와 승인 과정이 까다로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진료 지원 건수는 109건에 불과했다.
김숙자 정신간호사회 회장은 "지자체 정신건강심사위원회를 통해 외래치료지원이 결정되지만, 지자체(보건소) 인지도는 낮고, 치료 명령에 불응하는 당사자의 민원이나 보복을 우려해 결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치료를 거부하거나 불응할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다. 김 회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대상자를 계속 설득·관리해야 하는데 업무 부담이 상당히 크고, 끝까지 대상자가 외래치료를 거부하면 취할 수 있는 후속 조치나 대응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당사자들은 약물 부작용 등을 호소하며 강제치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어 외래치료 강제에는 이러한 논의가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은 "현재의 정신의료 체계에서 당사자는 수 시간을 기다려 10분 남짓 진료를 보고, 상담보다는 약물 중심의 치료를 받으며 이에 대한 고지는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상담 시간 등 최소 정신의료의 질 기준을 마련하고 약물 중단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등 당사자의 법적 능력을 존중하며 비강압적·회복지향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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