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는 뒷전"... 엔비디아, 30년 만에 신형 GPU 출시 중단
GPU(Graphics Processing Unit)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가 올해 게임용 GPU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1990년대 초 그래픽 칩 설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약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해 12월 RTX 50 슈퍼(Super) 시리즈 출시를 내부적으로 취소했다. CES 2026 키노트에서도 젠슨 황 CEO는 신형 게임용 GPU 대신 차세대 AI 칩 아키텍처 '베라 루빈(Vera Rubin)'을 전면에 내세우며 AI 올인 전략을 공식화했다.
배경에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공급난이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오라클 등 5대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가 올해만 5,000억 달러(약 732조 원) 규모의 AI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수익성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은 줄어들었다. 엔비디아 역시 한정된 메모리 자원을 수익성이 높은 AI 칩에 우선 배분하고 있다.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엔비디아 전체 매출에서 게임용 GPU 비중은 2022년 35%에서 지난해 8%로 급감했다. AI 칩의 이익률은 65%로 게임용 그래픽카드(40%)를 크게 웃돈다. 젠슨 황은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반도체 업계 만찬에서 "올해 메모리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전체 공급망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파는 게이머들에게 직접 미치고 있다. 기존 RTX 50 시리즈의 출하량이 30~40% 감축되면서 소매 가격은 최근 1년 새 30% 이상 상승했다. 차세대 RTX 60 시리즈의 양산 시점도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델, HP 등 PC 제조사들은 부족한 메모리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D램 채택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문제는 GPU만이 아니다. AI발 메모리 대란이 PC 부품 시장 전체를 덮치면서 게이머들의 부담은 전방위적으로 커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메모리 가격은 지난해 4분기 40~50% 급등한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40~50%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DDR4 키트는 25달러에서 80~100달러로 3배 이상 뛰었고, DDR5도 최대 4배까지 폭등했다. PCIe 4.0 1TB SSD 가격도 2배 상승했다. 엔비디아 RTX 5090의 소매가는 4,000달러(약 570만 원)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GPU 가격 폭등에 메모리·SSD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게임 PC 조립 비용은 '삼중고' 상태에 놓였다. 톰스하드웨어는 메모리 가격 상승 추세가 최소 4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게임용 GPU로 성장한 엔비디아가 게이머를 뒤로하고 AI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이번 결정은 AI 시대가 글로벌 IT 산업의 자원 배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외 게이머 커뮤니티의 반응은 뜨겁다. 클리앙에서는 "의리의 형님 기대했는데 냉혹한 자본주의 사장님이셨다", "게임 그래픽은 돈벌이가 안 된다는 거냐", "개인시장을 버리는 거겠죠"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에펨코리아에서는 해당 게시글이 조회수 29만, 추천 467개를 기록하며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노트북 DDR4 8GB가 6개월 전 2만 원이었는데 지금 8만 원", "3070인데 10년만 더 버텨보자", "꼬우면 게임을 하지 말라는 거냐"는 한탄이 이어졌다.
해외에서도 파장이 크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팀 리드 출신 마크 컨(그룸즈)은 X에 "엔비디아가 향후 2년간 새로운 GPU 모델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픽에 크게 의존했던 AAA 게임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2026년은 GPU 없는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톰스하드웨어 댓글란에는 "엔비디아는 더 이상 게이머를 고객으로 보지 않는 회사"라는 비판이 올라왔고, 모건스탠리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반대로 "저마진 허물을 벗는 것"이라며 긍정 평가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