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무죄→유죄…재판개입 2건 '직권남용' 인정(종합)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이도흔 기자 = '사법농단'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78)이 2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헌정사상 전직 대법원장이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첫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14-1부(박혜선 오영상 임종효 고법판사)는 30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병대(68) 전 대법관에게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고영한(70) 전 대법관은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 두 전 대법관은 모두 문제가 된 시기에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산하 사법부 수뇌부가 일부 재판에 개입해 직무권한을 남용했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이에 공모했다고 인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47개 범죄 혐의 중 2개가 유죄로 판단됐다.
우선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취소하게 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서울남부지법 민사재판부는 당시 원고의 신청을 받아들여 사학연금법에 대한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위헌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한정위헌은 법률 자체의 효력을 없애지는 않되 법을 놓고 여러 해석이 가능할 때 특정한 기준을 제시해 위헌적 해석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결정이다.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법 해석 권한이 법원에 있는데도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으로 이를 침해했다고 인식했다.

이에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해당 재판부에 전화해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단순 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존 결정문과 직권취소 결정문이 전산에서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고도 했다.
예전부터 사법부는 한정위헌을 둘러싸고 헌재와 인식 차이를 보여왔다. 한정위헌은 해당 법률의 효력은 그대로 둔 채 '특정하게 해석하는 한 위헌'임을 선언하는 변형결정이다. 그러나 과거 사법부는 한정위헌과 같은 변형결정은 근거가 없거나 박약한 결정 형식으로, 사법부의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헌재법 등에 따르면 일반법규는 즉시 무효, 형벌법규는 소급무효를 규정하고 있는데, 학계 다수설은 변형결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당시 행위를 두고 "그 실질은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쳐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전 위원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은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가 인정된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의 공모도 같은 이유로 인정됐다.
1심은 이 전 위원의 행위가 재판 개입에 해당하나 직권남용 혐의의 구성 요건을 모두 충족하진 않는다고 판단했고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모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또 2015년 11월 서울고법에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의 1심 결과를 뒤집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됐다.
당시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이는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당시 대법원 수뇌부 입장에 배치됐다. 이에 이민걸 당시 행정처 기조실장은 항소심 재판부 재판장에게 1심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힌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이 문건을 전달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고, 이로 인해 당시 항소심 재판장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가 방해받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양 전 대법원장이 이런 행위를 보고받고 묵시적으로나마 승인했다며 공모도 인정했다. 박 전 대법관도 문건 전달 사실을 인식한 만큼 재판 개입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문건 전달 행위를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을뿐더러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하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는 나머지 혐의는 1심과 마찬가지로 하급자가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거나, 남용했다 해도 공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후 임기 6년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각종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 47개 범죄 혐의가 적용됐다.
구체적 죄명으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 공소장에 적시됐다.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는 재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이다.
1심은 임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죄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일부 인정된다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가담 등 공범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곧바로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선고 직후 "직권남용죄에 대해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판결이었고, 일부 인정된 사실에 대해선 심리가 전혀 이뤄지지도 않았다"며 즉각 상고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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