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남을것" 부추기는 러…미·유럽 '그린란드 갈등'에 반색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병합 추진으로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커지는 것을 러시아가 반기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과 BBC 방송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대서양 동맹이 분열하고 있기 때문인데, 한편으로는 미국의 북극 영향력 확대가 러시아 자국 안보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9일(현지시간)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가 유럽과의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는 상황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다"며 "러시아 고위 관리들과 관영 매체들은 이를 두고 '대서양 동맹의 붕괴'라며 조롱 섞인 반응을 쏟아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일부 국제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그린란드 합병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미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 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속수무책인 유럽을 비꼬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 마가(MAGA)를 언급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는 '덴마크를 다시 작게'(MDSA), '유럽을 다시 가난하게'(MEPA)와 같다"며 "이 아이디어가 이제야 이해가 가느냐, 멍청이들아?"라고 원색적으로 우롱했다.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8개국에 대해 관세 부과를 위협한 데 대해 "유럽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일간 로시스카야가제타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확보하면 캐나다를 앞질러 세계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된다"며 "미국인들에게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제 폐지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부추기는 듯한 논조를 보였다.

러시아가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반기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러시아 평론가들은 그린란드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이 우크라이나를 무장 지원해 온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을 전례 없이 흔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세르게이 마르코프 전 크렘린궁 고문이 "트럼프의 적은 대부분 러시아의 적"이라며 모스크바가 트럼프 대통령의 야망 실현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영국 BBC 방송은 최근 러시아 매체들의 보도를 소개하며 "모스크바는 왜 트럼프를 칭찬·격려하는 것일까?"라고 반문한 뒤 "서방 동맹을 약화·분열시키는 모든 것이 러시아에 엄청난 호재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군사적 요충지인 북극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확보의 명분으로 중국과 함께 러시아의 위협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 방식은 러시아에도 경계 대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최근 러시아의 우방인 베네수엘라를 급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한 사건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러시아에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르코프 전 고문은 이와 관련해 "러시아가 독자적인 세력권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힘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러시아에는 우크라이나 문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그린란드 문제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BBC는 "모스크바는 트럼프 행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이 때문에 그린란드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러시아는 유럽을 비판할 뿐, 트럼프 대통령은 비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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