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하메네이…안에선 반정부 시위 밖에선 중동정세 요동

(서울=연합뉴스) 곽민서 기자 = 이란에서 경제난에 시달리던 민심이 폭발한 반정부 시위가 사흘째 이어지면서 이슬람 지도부는 안팎에서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안에서는 테헤란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시위대가 거리에서 분노를 쏟아내고, 밖에서는 숙적인 이스라엘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밀착해 이란을 상대로 재차 군사 행동 가능성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형국이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일단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은 온라인판에서 이같은 이란 안팎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하메네이가 지난 36년간 유지해온 체제 수호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분석했다.
1939년생인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1989년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후 종신 지도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최악의 경제 상황과 이슬람 규범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청년 세대의 저항이 이어지고,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예방 타격'을 거론하며 미국의 군사행동을 끌어내기 위한 로비를 지속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6월 이스라엘과 '12일 전쟁' 당시 적국의 공격에 취약한 허점이 노출되며 하메네이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약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게 CNN 진단이다.
실제로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지난 36년간 이어진 이슬람 신정일치 체제에 대한 저항도 감지된다.
이달 초 이란의 휴양지 키시섬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고 레깅스 차림으로 마라톤에 참가했고, 지난 10월에는 한 밴드가 테헤란 거리 한복판에서 미국 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세븐 네이션 아미'를 연주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엄격한 이슬람 규율에 반대하며 서구 문화를 수용하려는 청년층의 '조용한 저항'이 누적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CNN은 "이번 사태는 이란 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불만의 최근 단면을 보여준다"며 "시위 규모는 제한적이며 비조직적이지만, 시민들은 조용히 개인의 자유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처한 대외 환경 또한 녹록지 않다. 가자지구 전쟁과 맞물린 이스라엘의 공세 속에 중동 정세가 급변하면서 이란 군사력의 핵심인 이란혁명수비대가 상당 부분 약화했고, 시리아에서도 친이란 세력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소재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후 연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핵 시설 재건과 미사일 전력 재비축을 기도한다면 군사 행동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이날까지 사흘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상인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모인 시위대는 지난 주말 리알화 가치가 폭락한 것을 불씨로 '임대료조차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를 규탄했고, 테헤란대 등 대학교 8곳으로도 시위가 번져나갔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시위 도중 한 참가자가 테헤란 시내 도로에 앉아 오토바이를 탄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퍼져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맨몸으로 진압군의 탱크에 맞선 '탱크맨'(Tank Man)에 빗대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란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지목된다. 지난 십수년간 이어진 서방의 경제 제재와 대규모 화폐 발행으로 이란 통화 가치는 급락했고, 정부 예산 규모는 수천조 리알에 달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이란 리알화 환율은 28일 기준 달러당 142만 리알까지 치솟았는데,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체결 당시 환율이 달러당 3만2천 리알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10년 만에 화폐가치가 44분의 1로 폭락한 셈이다.
여기에 40여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과 전력난까지 겹치면서 민심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최근 이란은 주민 대피령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으며,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정부가 질 낮은 대체 연료 사용을 늘리면서 도시는 스모그로 뒤덮였다.
ms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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