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가 코딩 가르치는 동안... AI는 프로그래머 27%를 해고시켰다
넥슨재단이 대구교육청과 손잡고 2027년까지 코딩 교육 플랫폼 BIKO를 공교육에 확산시킨다는 소식이 지난 22일 발표됐다. 2016년부터 넥슨 청소년 프로그래밍 챌린지를 운영해온 넥슨재단의 야심찬 계획이다. 넷마블문화재단도 2019년부터 넷마블창문프로젝트로 초등학생 대상 코딩 교육을 진행 중이고, 웹젠은 2018년부터 청소년 코딩공작소를 운영해왔다.
게임 업계가 청소년 코딩 교육 사회공헌에 뛰어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게임사들은 미래 IT 인재 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수십억 원을 쏟아부었다.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제2의 마크 저커버그를 키운다는 목표였다.
그런데 정작 그 학생들이 사회에 나올 시점, 프로그래머 일자리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2년 말 ChatGPT 출시 이후 2년간 프로그래머 고용이 27.5% 급감했다. 이는 420개 이상 직업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10개 직업에 포함될 정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25년 네이버를 제외한 네카라쿠배당토가 신입 개발자 공개 채용을 중단했다. 억대 연봉을 꿈꾸며 코로나19 때 국비 부트캠프에 뛰어든 개발 꿈나무들이 코딩 낭인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AI가 코딩을 가장 잘하는 분야가 바로 프로그래밍이다. 앤트로픽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AI 도구에 요청하는 작업 중 컴퓨터 프로그래머 관련 업무가 700개 이상 직업 중 가장 높은 비율인 6.2%를 차지했다. ChatGPT에 말만 하면 코딩까지 해주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게임 업계가 그토록 공들인 코딩 교육 사회공헌은 무의미한 것일까. 더 나아가 이제 코딩 대신 게임 개발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는 메타 인지 능력이 중요하다 .
흥미롭게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코딩 교육이 아닌 게임 리터러시 교육이다. 2024년 교사 게임리터러시 사업에는 해외 10개국 교사들까지 참여했고, 2025년에는 전국 교사 대상 연수 콘텐츠가 중앙교육연수원에 탑재될 예정이다. 게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법, 게임을 학습 도구로 활용하는 교육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게임 리터러시는 게임의 규칙과 서사를 이해하며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게임을 하나의 문화 예술이자 소통의 매체로 받아들이는 역량을 의미한다. 스스로 게임 이용 시간을 조절하고 올바른 에티켓을 지키는 건강한 이용 태도 또한 중요한 요소로 포함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디지털 미디어 문해력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히며 교육적 가치가 높게 평가받고 있다. 결국 게임을 통해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타인과 창의적으로 교류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방향 전환이 아니라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청소년에게 코딩을 가르쳤는가. 프로그래머를 만들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나.
AI 시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단순 코딩 능력이 아니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과 AI 활용 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크 무로는 AI가 반복적인 코딩 작업을 대체하고 있다며, 프로그래밍 실업률 상승은 AI의 초기 가시적인 노동시장 효과라고 분석했다.
결국 중요한 건 코딩 문법이 아니라 컴퓨팅 사고력이고 메타 인지 능력이다. 게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한 교육 도구가 될 수 있다. 게임을 하며 전략을 세우고, 자원을 관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코딩 못지않은 사고력 훈련이다. 더욱이 게임은 코딩과 달리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창의성과 감성, 협업 능력까지 기를 수 있다.
게임 업계가 10년간 코딩 교육에 쏟아부은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제 방향을 재설정해야 할 때다.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AI를 활용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 양성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게임은 코딩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 도구가 될 수 있다.
넥슨재단이 대구교육청과 추진하는 BIKO 플랫폼도 단순 코딩 문법 암기가 아니라 컴퓨팅 사고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마블과 웹젠의 코딩 교육도 AI 시대에 맞게 재설계가 필요하다. 혹은 과감하게 게임 리터러시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AI가 2년 만에 무너뜨린 프로그래머 일자리 시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사고력과 창의성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 게임 업계의 사회공헌도 이제 그 본질을 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