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사쿠데타 4년10개월만에 총선…내달까지 3차례 투표(종합2보)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미얀마에서 군사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한 지 4년 10개월 만에 첫 총선 투표가 시작됐다.
군사정권 측은 이번 총선을 통해 정권이 다당제에 기반한 민간 정부로 이양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총선이 사실상 경쟁 정치 세력의 출마를 봉쇄한 채 군부 통치 연장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8일(현지시간) 미얀마 전국 330개 타운십(행정구역) 가운데 102곳에서 총선 1차 투표가 일제히 시작됐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과 수도 네피도 등 곳곳에서 유권자들은 학교, 정부 청사, 종교시설 등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했다.
군사정권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이날 네피도에서 투표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번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것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선거는 군부가 주관한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외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던 2020년 총선에 비해 이번에는 투표소가 상대적으로 한산한 모습이 목격됐다.
AFP 통신 집계에 따르면 양곤 도심 투표소 두 곳의 경우 이날 오전 6시 투표가 시작된 지 1시간 동안 투표한 사람은 100명 정도에 그쳤다.
투표소마다 군인·경찰·친정부 민병대 등 무장 병력이 배치되고 군 트럭이 거리를 순찰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가 연출된 가운데 일부 투표소에선 유권자들의 휴대전화 소지나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또 일부 지역에서 군 당국과 정부 관리들이 주민들에게 투표하도록 압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남부 몬주의 한 주민은 "투표하고 싶지 않지만, 어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우리 마을에 와서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표하러 갔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이날 1차 투표 이후 내년 1월 11일 100개 타운십, 같은 달 25일 63개 타운십에서 2∼3차 투표가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미얀마가 군사쿠데타 이후 내전에 휩싸인 가운데 반군 등이 장악한 나머지 65개 타운십은 현재로서는 투표가 예정돼 있지 않다.
상원 224석 중 168석, 하원 440석 중 330석이 이번에 선출되며, 상·하원의 각각 25%인 나머지 166석은 군 최고사령관이 임명한 현역 군인에게 배정된다.
총선이 끝나면 60일 안에 의회 간접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상원, 하원, 군 출신 의원들이 각각 자신들 중에서 부통령을 선출(호선)한 뒤 전체 의회가 부통령 3명 중에서 대통령을 뽑는 방식이다.
선거 결과 발표일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1월 말∼2월 중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총선에는 4천963명이 후보자로 등록했으며, 전국적으로 후보를 내고 경쟁하는 정당은 6곳뿐이다.
이 중 전직 군 장성들이 주도하고 군사정권의 지원으로 조직력·자금력이 탄탄한 통합단결발전당(USDP) 소속 후보가 1천18명으로 전체 출마자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USDP 후보들은 변변한 경쟁 후보가 없는 여러 지역에서 사실상 무투표로 당선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옛 군사정권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통합당(NUP) 등 나머지 5개 정당도 모두 군과 가까운 친(親)군부 정당으로 분류된다.
반면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등 약 40개 정당은 군사쿠데타 이후 해산돼 선거에 나오지 못했다.
현재 수치 고문은 부패 등 혐의로 27년 형을 선고받고 가족 면회 등 외부와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가운데 복역 중이다.
내전 와중에 치러지는 이번 총선은 사실상 민주 진영 등 반대 세력은 제외한 채 군사정권과 가까운 후보들 위주의 반쪽짜리 선거인 셈이다.
따라서 USDP가 선거에서 압승하고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대통령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태국 까셋삿대의 미얀마 전문가인 랄리타 한웡은 이번 선거에서 USDP가 승리, 다른 친군부 정당들과 힘을 합해 차기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사정권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모두 차단하는 등 정보 확산을 제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선거 비판 행위에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법을 만들어 200여명을 기소했다.
이에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선거가 군부 통치를 포장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엔이 임명한 미얀마 인권 전문가 톰 앤드루스는 엑스(X·옛 트위터)에 "민간인을 폭격하고, 정치 지도자를 투옥하며, 모든 형태의 반대 의견을 범죄 취급하는 군사정권이 주관하는 선거는 선거가 아니라 총칼 아래에서 펼쳐지는 부조리극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미얀마 사무소도 이날 "미얀마의 미래가 국민 의지를 반영하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포용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미얀마 국민과 그들의 민주적 열망에 연대한다"고 밝혔다.
정권은 또 국제선거감시단을 초청했지만, 지금까지 러시아·중국·베트남·캄보디아·벨라루스·니카라과 등이 선거 감시단을 파견한 가운데 서방 각국은 호응하지 않고 있다.
한편, 전날 밤 미얀마 동부 카인주 미야와디 지역의 한 USDP 사무실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 1명이 숨지고 최소 12명이 다쳤다고 현지 관계자가 NYT에 전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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