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조례 무관하게 문화유산 보호 가능"…대법 판단 배경은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대법원이 6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의 개발규제 조항을 삭제한 서울시조례 개정이 유효하다고 본 데에는 '해당 조례가 없더라도 상위법에 따라 문화유산 보호가 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이날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중 개정 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서울시의회의 승소로 판결하면서 현행 문화유산법상 문화유산 보호 규정을 상세히 설시했다.
소송의 쟁점은 문화유산법상 시·도지사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조례로 정해야 함에도, 서울시의회가 2023년 '보존지역 바깥 범위'에서의 규제 조항을 일방적으로 삭제한 행위가 적법한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문화유산법 문언상 '보존지역을 초과하는 범위'에서까지 문화보존 영향 검토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는 건 아니라고 짚었다. 이런 내용의 조례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서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할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보존지역 바깥에서 이뤄지는 건설공사에 대해 일률적으로 기존 조례 조항과 같은 문화유산 보존 영향 검토 의무를 부과하지 않더라도 현행 문화유산법 조항에 따라 문화유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화유산법 12조는 '건설공사로 인해 문화유산이 훼손, 멸실 또는 수몰될 우려가 있거나 그 밖에 문화유산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그 건설공사의 시행자는 국가유산청장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한다.
같은 법 13조 3항은 '보존지역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지정문화유산의 외곽경계로부터 500m 안으로 정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문화유산의 특성 및 입지 여건 등으로 인해 500미터 밖에서 진행하는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500m를 초과해 범위를 정할 수도 있다'고 규정한다.
또 35조 1항 2호는 '어떤 행위가 국가지정문화유산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면 해당 행위를 하려는 자는 국가유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대법원은 이들 조항을 언급하며 "이 사건 조례 조항을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문화유산 또는 역사문화환경의 보호에 차질이 초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은 최근 '왕릉뷰 아파트' 재현 우려가 나온 서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주목받았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 높이 계획 변경을 뼈대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는 당초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101m, 청계천변 145m로 변경됐다. 최고 높이 145m에 이르는 고층 빌딩이 들어설 길이 열린 셈이다.
종묘 경관 훼손 우려가 제기됐으나 서울시 측은 세운4구역이 종묘로부터 약 180m 떨어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100m) 밖이라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문화유산법령과 서울시조례에 따라 보존지역 바깥에서도 여러 규제를 적용받아왔으나 이번 판결로 조례상 걸림돌은 사라진 만큼 서울시도 사업 추진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법 판결로 종묘 앞에 145m 빌딩 건축이 가능해졌다는 일각의 주장은 무리한 해석이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판결 취지상 서울시조례를 떠나서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유산 보호에 영향을 미친다면 국가유산청장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법이 있다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국가유산청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가 재발로 인해 세계유산의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문화유산위원회, 유네스코를 비롯한 관계 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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