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이 이야기는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원태인(25)과 이승현(23)의 선의의 경쟁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개막 전 이승현은 원태인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규정이닝(144이닝)을 달성할 경우 겨울 패딩을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승현이 부상으로 정규시즌을 일찍 마감하며 87⅓이닝에 그쳤다. 결국 선물을 받지 못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도 이승현은 원태인을 찾아갔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QS) 개수를 놓고 내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삼성엔 이 분야 전문가가 있다. 외국인 선발투수 아리엘 후라도(29)다. 원태인은 이승현과 내기 일화를 들려주며 후라도와의 대화도 공개했다.
우선 이승현부터 언급했다. 원태인은 "QS 개수로 겨루되 핸디캡을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3개를 줬다"며 "개막 후 내가 QS 7개를 쌓는 동안 (이)승현이는 1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 시점에 핸디캡을 4개로 늘려줬다. 올 시즌 종료 후 우리 둘의 QS 개수 차이가 4개 이하면 승현이가 이기는 것이고, 5개 이상이면 내가 이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6일 기준 원태인은 12경기에 선발 등판해 QS 9개를 쌓았다. 5승2패 평균자책점 2.68을 빚었다. 이승현은 11경기에 나섰지만 아직 QS를 만들지 못했고,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터트렸다.
원태인은 "지금까지 내기를 많이 해줬지만 승현이는 한 번도 달성을 못 해 선물을 못 받았다. 이번엔 내가 '신발 고르고 있겠다'고 말했다"며 "비싼 걸로 알아보고 있다. 약속은 약속이니 어쩔 수 없다. 꼭 받을 것이다"며 미소 지었다.
원태인만의 QS 비결이 따로 있는지 물었다. 그는 "무조건 '볼넷'이 관건이다. 올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도 볼넷을 주지 않는 것이다"며 "안타를 맞을지언정 볼넷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투구하고 있다. 올 시즌 최소 볼넷 1위 하는 게 내 목표다"고 밝혔다.


각오대로 올해 볼넷을 8개만 기록했다. 규정이닝을 채운 리그 전체 선발투수 중 최소 볼넷 1위를 달리고 있다. 경기당 볼넷 허용 수치 역시 0.97개로 유일하게 1개를 넘지 않으며 1위다.
또 다른 비결이 있다. 원태인은 "사실 후라도 선수가 매번 내게 '우리는 QS를 해야 한다. 최소한 6이닝 이상 끌어주며 실점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로 생각이 같다"며 "그래서 의욕이 더 커졌다. 경기 초반 점수를 내주더라도 '꼭 6이닝 3실점 내로 막아내겠다'는 각오로 투구하게 된다. 그랬더니 QS도 많이 쌓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원태인은 6일 대구 NC 다이노스전에 선발 등판해 3회까지 3실점하며 고전했다. 그러나 투구 수를 아끼며 효율적인 피칭을 펼쳤고, 결국 7이닝 3실점을 기록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덕분에 삼성은 7-3으로 승리하며 2연승을 달릴 수 있었다.
원태인은 "팀 내 선발투수 중 가장 꾸준히 로테이션을 도는 게 우리 둘이라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항상 서로 '투구 수가 많더라도 우리는 6이닝을 책임지자'고 한다"며 "솔직히 매 경기 우리의 목표는 '7이닝'이다. 무조건 7이닝을 던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후라도는 올 시즌 13경기에 등판해 QS 11회를 뽐냈다. 리그 QS 부문 단독 1위다. 이닝 소화 능력도 뛰어나다. 83이닝을 책임지며 리그 2위에 올랐다. 후라도는 키움 히어로즈에 몸담았던 2023년 30경기서 183⅔이닝·QS 20회, 지난해 30경기서 190⅓이닝·QS 23회를 자랑하기도 했다.
원태인은 "6이닝을 맡아 QS를 기록하고도 서로 아쉽다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6이닝만 던져 미안하다. 내일 네가 8이닝을 책임져 달라'는 말도 한다. 그렇게 시너지 효과를 내려 하고 있다"며 "후라도는 진짜 멋진 선수다. 한 시즌 동안 팀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투수다. 팀에 정말 필요한 선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나도 후라도를 따라 하려 한다. 투구 스타일이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고 본다"며 "후라도가 등판할 때마다 자기가 던지는 것을 보라고, 로케이션 등을 보며 고민하라고 한다. 정말 똑똑한 선수다"고 덧붙였다.
후라도는 원태인에게 "포스트시즌까지 합쳐 200이닝 이상 던질 계획이다"고 예고했다. 원태인은 "지금 페이스로만 보면 정규시즌에 200이닝도 가능할 것 같다. 대단하지 않나"라며 감탄했다.
후라도 덕분에 개인 목표도 상향 조정했다. 원태인은 "내 QS 커리어 하이는 (2023년의) 17개였다. 올해 그것만 깨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18개를 목표로 삼았다"며 "후라도가 계속 'QS 20개 못 하면 선발투수가 아니다'라고 한다. 본인은 잘하니 그게 쉬운 줄 아는 듯하다. '올해 20개 하고, 내년에 25개 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원태인은 "계속 옆에서 격려하며 살짝 내 속을 긁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목표를 QS 20개로 올렸다. 꼭 달성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원태인이 또 성장하려 한다.


사진=최원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DB, 삼성 라이온즈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