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의 '눈물이 움직인다'·남진우의 '숲속의 대성당'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풀의 탄생 = 문태준 지음.
"잎사귀에 빗방울이 떨어지네 / 나의 여름이 떨어지네 // 빗방울의 심장이 뛰네 / 바라춤을 추네 / 산록(山綠)이 비치네 / 빗방울 속엔 / 천둥이 굵은 저음으로 우네 / 몰랑한 너와 내가 있네"(시 '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에서)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문태준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쉽고 서정적인 시어로 과장 없이 자연을 묘사한 63편의 시가 수록됐다.
해설을 쓴 홍용희 문학평론가는 "문태준의 고유한 창작 방법론은 자연과의 협업"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가 펼쳐 보이는 고요의 세계는 우리의 눈과 귀를 틔워주고, 자연의 비경 속에서 어느덧 우리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한다"고 풀이했다.
"사람 없는 뒷집 / 빈 마당은 / 고요가 나던 곳 // 오늘은 눈발 흩날려 // 흰 털 새끼 고양이 / 다섯이 / 뛰는 듯 // 움직이는 / 희색(喜色) // 그러나 // 고요를 못 이겨 / 눈발이 멎다"(시 '뒷집' 전문)
문학동네. 104쪽.

▲ 눈물이 움직인다 = 손택수 지음.
"내가 말라붙은 밥풀떼기지 뭐, / 침상에 종일 붙어 있던 노인 // 사지를 움직일 수 없으니 / 눈물이 움직인다 // 말라붙은 풀을 / 다시 쑤고 있다"(시 '밥풀로 붙인 편지'에서)
시인이 바라본 세계에서 슬픔은 그저 슬픔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인다. 눈물은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말라붙은 풀을 다시 쑤고 생명력을 이어가게 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성으로 수려한 작품세계를 쌓아온 손택수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일상에 가려진 슬픔과 고통의 흔적을 포착해낸 69편의 시가 실렸다.
수록된 몇몇 시에선 지나온 것과 이별한 사람의 흔적에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시 '이별하는 돌'에선 "돌을 쥔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온기가 있다 / 나의 체온이 건너간 것이다"라고 노래한다. 시 '모래별'에선 "머물러 있을 때조차 이미 반쯤은 이별의 자세 / 늘 떠나고 있지만 또한 그 자리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한다.
창비. 140쪽.

▲ 숲속의 대성당 = 남진우 지음.
"어두운 밤 숲으로 들어간 그대는 어둠에 잠긴 숲 한가운데서 / 욕조 하나를 발견한다 // 보이는가 새하얗게 빛나는 사기질의 욕조가 / 지금 숲의 빈터 두텁게 쌓인 나뭇잎과 덤불 사이에 놓여 있다"(시 '숲속의 대성당'에서)
빛 한 점 찾기 어려운 어두운 숲에서 욕조가 새하얗게 빛나며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마치 범속한 것과 성스러운 것의 대비처럼 보인다.
신성한 것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어를 정갈하게 갈고닦아온 남진우가 펴낸 일곱 번째 시집이다. 삶과 죽음, 속된 것과 신성한 것의 경계를 탐구하는 69편의 시를 엮었다.
시인은 시 '주일'에 "폐허가 된 교회 정문 앞 // 한 손에 죽은 새를 / 다른 한 손에 지구본을 들고 / 그가 서 있다"고 썼다. 새는 희망을, 지구본은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을 연상시키며, 이 둘을 손에 든 '그'는 절대자를 암시하는 듯하다.
순서상 가장 앞에 실린 '새를 접다'에도 새가 등장한다. 날개와 몸통이 접히고도 꿋꿋이 날아가는 새는 꺾이지 않는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새 한 마리 새로 피어난 새가 / 가볍게 날개를 펼치고 허공 위로 떠오른다 / 아무리 접어도 접히지 않는 새가 빛 속으로 멀어져 간다"(시 '새를 접다'에서)
문학과지성사.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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