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근한 기자) 스포츠 종목 가운데 야구에만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면 바로 '희생'이다. 희생 번트와 희생 뜬공은 자신의 타석을 희생해 팀을 위한 결과를 내는 과정이다. 공식 기록상 그 타석은 타수에서 빠진다. 희생의 가치를 반영하는 야구만의 묘미다.
이런 희생과 관련한 기록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두산 베어스 '천재 유격수' 김재호다.
김재호는 2024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김재호는 개인 통산 희생 뜬공 79개로 KBO리그 역대 6위에 올랐다. 김재호는 개인 통산 희생 번트 기록도 105개로 KBO리그 역대 40위에 위치했다. '희생 달인', '희생 장인'이라고 충분히 불려도 될 정도다.
김재호는 2004년 1차 지명으로 화려하게 두산으로 입성했다. 하지만, 김재호가 꽃을 피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당시 주전 유격수였던 손시헌의 그늘에 가려 10년 가까이 백업 역할을 맡았던 김재호는 2014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등극했다.
김재호는 2015시즌 133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7, 126안타, 3홈런, 50타점으로 데뷔 첫 풀타임 3할 시즌을 달성했다. 2016시즌 김재호는 타율 0.310, 129안타, 7홈런, 78타점, 출루율 0.389, 장타율 0.440 호성적과 함께 2년 연속 팀 우승을 이끌면서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김재호는 2019시즌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364, 4안타, 3타점, 3볼넷, 4득점으로 팀 세 번째 우승에도 큰 힘을 보탰다. 2020시즌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0.421, 8안타, 1홈런, 7타점, 4볼넷으로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김재호는 선수 생활 말년엔 2023시즌과 2024시즌에도 후반기 반등하는 활약으로 포스트시즌 선발 유격수에 후배들을 제치고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두산 베어스 유격수 자리에서 김재호의 이름을 지우는 건 쉽지 않았다.
김재호는 개인 통산 1793경기, 1235안타, 54홈런, 600타점, 661득점, 581볼넷, 79도루, 출루율 0.356, 장타율 0.366의 기록을 남겼다. 1793경기 출전은 두산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경기 출전 기록(2위 안경현·1716경기)이다. 두산 구단 유격수 출전 기준 안타, 타점, 홈런 등 대다수의 기록도 김재호가 보유했다.
다음은 김재호와 현역 은퇴 관련 일문일답이다.
-21년 만에 야구에서 벗어난 겨울은 어떤가.
스트레스를 이렇게 안 받을 수 있나 싶다(웃음). 최근 몇 년 동안 겨울마다 어깨 재활 보강 운동에 매진했다. 어깨 못 버텨주면 끝이라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이 없다. 이제 가족들의 짐이나 아이들을 들어주는 것에 어깨를 쓰고 있다(웃음).
-현역 은퇴 과정에서 무언가 미련이 안 남는 느낌이 들던데.
솔직히 후회와 아쉬움이 별로 없다. 어깨가 아픈 뒤로는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던 듯싶다. 성적을 못 내면 욕을 먹어야 하는 프로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몸이 아픈 채로 해마다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사실 후련함이 더 크다.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에다 대표팀 우승(2015 프리미어12)도 있었고, 무엇보다 원 클럽 맨으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을 끝낸 게 가장 값진 성과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때는 현역 마지막 타석임을 직감했었나.
그때 이미 그만둬야겠단 생각이 커서 어느 정도 예감은 했었다. 마지막 타석 때 안타를 못 쳐서 아쉬운 것보다는 개인 통산 1800경기 출전과 1500안타 달성 없이 유니폼을 벗은 게 조금 아쉽긴 했다.
-희생 뜬공 기록으로 주목받는 선수기도 했다.
옛날부터 3루 득점권 기회에서 안타보다는 희생 뜬공을 일부러 노리긴 했다. 시간이 지나고 주변에서 희생 뜬공의 달인이라고 말해주더라. 개인적으로 팀 타선마다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팀을 위해서 희생이 필요할 때 그걸 해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이지 않을까.
-일부러 밀어 쳤다고 봐야 할까.
가끔 밀려 맞은 것도 있었지만(웃음). 내가 어렸을 때는 일부러 밀어 치는 연습을 자주 소화했다. 옛날 스타일로 타격할 때 가상의 벽을 만들 거다. 최근엔 스윙 궤도를 자연스럽게 끌고 나오면서 앞에서 맞으면 좌측, 정타로 맞으면 가운데, 늦게 맞으면 우측으로 날아가는 타구가 나오도록 스윙을 만들더라. 우리 때는 무조건 몸쪽도 밀어 치도록 하는 주문이 많았다.
-타격도 그렇고 수비에서도 소위 말하는 BQ를 보여준 선수였다.
결국 모든 상황에서 팀을 위한 최선의 플레이가 무언지 빠르게 캐치 하는 선수가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공격적이어야 하는 상황일 때는 공격적이어야 하고, 지켜봐야 할 상황일 때는 지켜볼 줄 아는 선수다. 수비에서도 오랫동안 경기를 하다 보면 이상한 상황이 올 거란 촉이 온다. 그때 그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는 선수와 그냥 잡고 던지기만 하는 선수와는 완전히 차이가 난다.
-몇 년 전부터 젊은 내야수들에게 타격보다 수비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다.
최근 어린 야수들을 보면 타석에서 보이는 집중력과 머리 싸움을 수비에서 못 보여주더라. '나에게 공이 올까 안 올까', '공이 튀면 안 되는데' 이런 단순한 생각만 하면 안 된다. 경기와 주자 상황, 그리고 상대 타자 성향까지 고려해서 수많은 확률을 고려해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야구는 일주일에 6일 동안 매일 3시간 이상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집중력을 보여야 한다. 항상 머리가 깨어 있는 야구를 해야 다른 선수들과 다른 차별점을 보일 수 있다.
-글러브에서 곧바로 공을 빼내는 기술은 타고났다고 봐야 할까.
나도 처음에는 다른 선수들처럼 잡고 던졌다. 그러다가 수비에 자신감을 얻고 그런 기술을 배운 거다. 수도 없이 말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격 연습보다 수비 연습을 훨씬 더 많이 소화했다. 그만큼 노력을 쌓아야 자기 걸 만들 수 있다. (안)재석이의 경우에는 그런 시간 없이 처음부터 그 기술을 배우려고 했다. 빨리 빼야 한단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니까 더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손만 빨리 하는 게 아니라 결국 하체 스텝이 안정돼야 저절로 공이 그렇게 빠지는 건데 그런 걸 스스로 느낄 시간이 아직 부족한 거다.
-그만큼 안재석 선수가 롤 모델을 닮고 싶은 마음이 컸을까.
처음에 재석이를 봤을 때 어릴 적 내가 생각나기도 하고, 되게 높게 평가했었다. 그런데 체력이 단점이더라. 기본적인 신체 조건은 좋으니까 힘을 키우면 더 좋은 유격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52번 후계자는 누가 될까.(인터뷰 뒤 2025년 신인 내야수 박준순이 등번호 52번을 달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렸을 때 고등학교 때 단 번호인 31번을 달려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6번을 달았었다. 가뜩이나 6번을 다니 왜소해 보여서 다른 번호를 달고 싶더라. 그리고 어느 날 52번이 하트로 변하는 걸 보고 52번을 달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쭉 그 번호로 갔다. 사실 좋은 기운이 있는 번호일지는 모르겠다(웃음). 그래도 욕심이 있는 선수가 그 번호를 달았으면 좋겠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이겨낼 선수지 않을까. 누가 더 간절하게 더 미친놈처럼 하느냐가 중요하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사진=엑스포츠뉴스 DB
김근한 기자 forevertoss88@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