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귀어·귀촌지원센터의 '마린보이 프로젝트' 통해 낯선 울진 정착
"앞만 보고 달려야 할 때" "주변 사람들 처음에는 만류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할 때" "주변 사람들 처음에는 만류했다"
(울진=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바다에선 망하진 않잖아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뱃일을 배워서 자리를 잡으려고 서울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울진에 내려왔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경북 울진항.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어르신과 건장한 남성이 항구를 나갈 채비로 분주했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이 둘의 조합은 선주와 임차인 사이다. 경북 귀어·귀촌지원센터의 귀어 정착 지원 사업인 '마린보이 프로젝트'를 통해 맺어졌다.
해당 사업은 임차료 80% 지급 등의 지원을 한다.
선주는 울진에서 나고 자란 최중도(71)씨, 배를 빌린 임차인은 두 딸 아빠 최성훈(40)씨다.
최성훈씨는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지난 15년간 사무직에 몸담아왔다. 귀어를 꿈꿔왔던 그는 마린보이 프로젝트를 우연히 접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올해 울진항에 내려왔다.
그가 빌린 배는 3t급 통발 어선인 '약진호'다.
약진호가 주로 잡는 어종은 문어. 이날도 약진호에는 문어를 잡기 위한 통발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통발 안에는 문어를 유인하는 정어리가 플라스틱 통에 미끼로 담겨있었다.
최성훈씨는 "정어리는 꽝꽝 얼어있을 때 두동강 내서 넣어야 한다. 그래야 문어가 냄새를 맡고 통발로 들어온다"며 통발을 들어 보였다.
탑승을 마친 약진호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더니 항구를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항구에 나서자마자 강한 바닷바람이 배를 휘감았다. 육지에서는 잔잔해 보이던 파도도 항구를 떠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배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최성훈씨는 "오늘 이 정도 파도면 잔잔한 편"이라며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이날은 바다에 던져놓은 통발을 걷고 새롭게 미끼를 채워놓은 통발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통발은 보통 60개를 한 묶음으로 준비한다. 통발을 고정하는 20㎏짜리 닻과 위치를 표시해주는 깃발 달린 부표도 함께 묶인다.
약진호는 빨간 깃발로 표시된 부표에 자리를 댄 후 작업을 시작했다.
밧줄을 감은 양망기가 돌아가자 수심 20∼30m에 아래 가라앉아있던 통발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주인 최중도씨가 통발을 올리면 성훈씨가 잡힌 물고기들을 털고 차곡차곡 정리했다.
이날 문어 대신 장어, 우럭 등이 잡혔다.
최중도씨는 "원래 2월은 돼야 문어가 잡힌다. 문어가 잘 잡히는 포인트를 미리 선점하기 위해서 지금 통발을 뿌리는 거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중도씨는 한 달에 열흘간 최성훈씨와 함께 바다로 나가 뱃일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 1년은 해야 일이 익숙해진다. 배를 항구에 대는 기술도 쉽지 않다"며 "그래도 일을 잘 따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통발을 걷은 후 새 통발을 바다에 뿌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배 엔진소리가 커서 작업 내내 싸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고성이 오갔다. 이들은 "빼라!", "됐어요. 고고" 등 큰 소리로 소통하며 통발을 뿌렸다.
최성훈씨는 "엔진 소리가 커서 소통을 하려면 소리를 지르듯이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작업을 이어갔다.
작업을 마친 후 약진호는 다시 항구로 돌아왔다. 항구로 돌아와 보니 바닷물이 말라버린 옷에는 하얀 소금기가 얼룩처럼 묻어있었다.
이날 통발로 잡은 물고기들은 죽변항의 위판장에 내다 팔기 위해 수족관에 옮겼다.
최성훈씨는 선주의 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오후 통발 작업 준비를 하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귀어를 결심한 것에 후회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할 때"라며 웃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 만류했다"며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면 그 뒤에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돼 도전했다"고 말했다.
최성훈씨에게 울진은 낯선 지역이다. 고작 세 번 여행 온 게 다지만 그는 일부러 울진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울진에 왔다"며 "지인이 있으면 괜히 힘들 때 술 한잔하자고 연락하며 내 마음이 약해질까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을 해보니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라며 "대신 부지런한 만큼 보답이 있어 체력이 좋을 때 열심히 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hs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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