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정치적 혼란에 얼어붙은 특수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경기 침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계엄과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 제주지역 연말 특수가 실종됐다.
20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전후로 제주를 방문하는 내외국인 수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단체 관광 취소 문의는 있었지만, 실제 취소된 건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관광업계는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 정국까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소비나 여행 심리가 더욱 위축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실제 전날 찾은 제주시 연동 누웨모루거리는 평일임을 감안해도 번화가임이 무색하게 썰렁했다.
누웨모루거리는 가까운 거리에 면세점이 있고, 늦은 밤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해 젊은세대나 특히 중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인적이 드문데다 문 앞에 적힌 영업시간과는 달리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부지기수였다.
중국에서 온 관광객 자오센(27)씨는 "이미 계획된 여행이라 왔는데 번화가나 관광지를 갈 때마다 별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누웨모루거리 옷 가게에서 일하는 30대 직원은 장사가 잘되느냐는 질문에 "아니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오늘 세일 중인 니트 몇개 겨우 팔았다"며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출이 꽤 나왔는데 최근들어 내국인 중심으로 손님 발길이 끊겼다"고 말했다.
썰렁한 곳은 누웨모루거리뿐만은 아니었다.
최근 오영훈 제주지사는 담화문을 통해 "소비심리 회복 동참을 위해 취소됐던 송년회를 재개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좀처럼 예년같은 연말연시 모임이나 회식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18일 저녁 시간대 방문한 제주시 연동 'ㅇ' 향토음식점은 매장과 주차장이 넓어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몇몇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있었다.
음식점 주인 김모(53)씨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서 모처럼 만에 연말 특수를 누렸는데 1년 만에 완전히 망했다"며 "원래 11월보다 연말인 12월에 손님이 더 많은 데 이번 달은 지난달보다 벌써 30%가량 매출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TV를 보면 다 집회에 가 있는데 누가 제주도로 관광 올 생각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50대 사장도 "오픈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문을 닫게 생겼다. 오늘은 겨우 2개 테이블만 받았다"며 "정부와 지자체에서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라고 독려하고 있지만 한동안 전망이 좋지 않아서인지 쉽게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돼지갈비집을 운영하는 임모(47)씨는 "국회에서 탄핵 가결안이 통과된 후 그 전보다는 예약이 많아졌지만, 연말임을 감안하면 신통치는 않다"고 말했다.
숙박업계도 고된 겨울을 보내기는 마찬가지다.
서귀포시 A 호텔 관계자는 "계엄령 후 며칠간 예약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기존 예약 중 취소된 건은 단체 1건뿐"이라며 "애초 경기가 좋지 않아 예약이 작년보다 줄었던 상황에서 계엄사태까지 발생해 정말 많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연말은 각종 협회나 정부 기관 등이 제주에서 행사나 모임을 여는 수요가 많은데 올해는 사실상 끊겼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긴급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 외식업·숙박업자 505명 중 237명(46.9%)이 계엄·탄핵 사태 등 영향으로 이달 들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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