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접대 문화'에서 건강한 시민 연대·기부 새로운 문화로
혼란 속 시행착오·"먹튀" 주장도…"자연스럽게 규칙 생길 것"
혼란 속 시행착오·"먹튀" 주장도…"자연스럽게 규칙 생길 것"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음료를 미리 만들어두자니 식어서 버려야 하고, 손님이 와서 만들자니 대기시간이 길 것 같고…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계속 혼란스러웠어요."(국회 앞 프랜차이즈 카페 점주 서모 씨)
"페어플레이를 안 하는 선수가 있다고 해서 스포츠를 하지 말자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선결제 문화가 지속될수록 관련 규칙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국회 앞 개인카페 운영자 이모 씨)
이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를 통해 새롭게 집회 문화로 부상한 '선결제' 릴레이가 지나간 자리의 반응들이다.
우리 사회의 연대 의식을 고취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집회 선결제의 큰 물결 속에서 일부 잡음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초기 시행착오일 뿐이며 자연스럽게 건강한 문화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선결제는 상품 수령자를 정해 놓지 않은 주문 방식이다.
이번 국회 앞 탄핵 촛불시위에서 많은 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선결제한 매장을 알렸고, 시위 참여자들은 SNS를 보고 이미 값이 치러진 음료 혹은 간식을 무료로 받아 가는 움직임이 '기부 릴레이'처럼 이어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집회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해외 또는 지방 거주민들을 중심으로 선결제가 확산했고, 아이유, 뉴진스 등 연예인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 정치인도 동참했다.
이는 결제자·업주·수령자 간 신뢰를 토대로 작동하며 감동을 전해줬다.
그러나 지난 14일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이 3자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많게는 수천건에 이르는 선결제 주문과 불특정 다수의 수령자가 국회 인근의 한정된 가게를 중심으로 몰리면서 혼란 속 일부 거래의 불투명성과 서비스 미흡 지적이 나온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선결제된 음식·음료를 받으려다 불편을 겪었다는 경험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선결제 물량이 남았는데도 일부 가게가 소진됐다고 안내했다며 업주의 '먹튀' 의혹을 제기하거나, 업주가 선결제 물량을 당일에 반드시 소진해야 한다는 임의 규정을 만들어 다음날에는 이용할 수 없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선결제에 따른 이른바 '공짜' 손님과 현장 결제 손님을 차별 대우했다거나, 가게가 배달 물량을 소화하느라 선결제 물량이 뒷전으로 밀려 오랜 시간 대기해야 했다는 등 경험담을 올리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선결제 받은 사업장들에 대한 씁쓸한 후기'라는 게시글을 통해 "선결제 주문이 배달 주문 때문에 계속 밀렸다. 이러다 집회 끝날 때까지 못 먹겠다 싶어서 결국 탈출했다"고 적었다.
이어 "다른 집에도 선결제 해주신 분 성함을 말하니까 '지금 안돼요'라고 말하곤 뒷사람 주문을 받았다. 너무 (사람이) 몰려서 안된다는 것"이라며 "바쁜 건 알겠지만 선결제도 고객이 주문한 건데 거지들한테 무료 배식해주는 것처럼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불만이 제기된 음식점을 공유하거나, 비교적 양심 있고 친절하게 응대했던 음식점을 리스트로 만들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무례한 응대를 했다는 지적을 받은 한 음식점주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장문의 사과·해명문을 올리며 악화하는 온라인 여론에 대응하기도 했다.
국회 인근에서 선결제 주문을 받은 업주들은 처음 겪는 선결제 문화에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국회 앞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기존에 하던 업무에 더해 선결제 물량을 소화해야 해 업무 강도가 높았을 뿐 아니라 손님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추가금을 내고 선결제된 음료 외 다른 메뉴를 요구하는 등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제 경우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음료를 중심으로 결제 시스템을 재정비했고, 제가 직접 손님을 응대했다"며 "만약 프랜차이즈 업체라면 메뉴판을 맘대로 바꿀 수 없고 직원들이 손님을 응대하기 때문에 그날처럼 인파가 몰린 상황이라면 서비스적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렌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50대 서씨도 "선결제가 아닌 후불제를 요청하거나, 주말 아닌 평일에는 사람이 얼마나 몰릴지 몰라 인력을 급히 투입하는 등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됐던 순간이 많았다"며 "아직 저희 가게에 대한 민원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선결제 문화가 처음이다 보니 서투른 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본래 선결제는 뇌물성 접대 문화에서 비롯됐다. 비즈니스 상대방 등을 접대할 때 식당 혹은 술집에 비용을 미리 지불해두는 관행을 말한다. 그렇게 음지에서 이뤄지던 선결제가 이번 탄핵시위를 통해 양지로 나와 시민의 연대 문화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집회 선결제 문화가 건강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는 "매너 없는 경기를 했다고 스포츠를 없앨 수는 없지 않나. 페어플레이할 수 있는 룰을 만들면 된다"며 "저희 가게만 해도 70여명의 기부액이 2천800명가량에 혜택으로 돌아갔다. 긍정적 효과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서씨도 "향후 수령 일수 및 주문량을 제한하는 등 방식으로 선결제 문화가 성숙해나가길 바란다"며 "그날 국민들이 보여줬던 연대의식이 폄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선결제 매장 지도 '시위도 밥먹고'를 제작한 X 이용자 'to***'는 "일부 매장의 부당한 대처로 인해 (선결제 문화의) 지속성에 대한 회의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이에 안타까움을 표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의 선의는 침체됐던 상권을 살리고 많은 이들의 추위를 사그라들게 하는 긍정적 영향을 발휘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것에 마음을 쓰며 일찍이 지치지 맙시다. 친절함과 인간의 선의를 믿고 오랫동안 촛불을 태웁시다"라고 적었다.
한편, 이번 탄핵집회로 주목 받은 영유아를 위한 '키즈버스'는 남은 후원금을 향후 헌법재판소 인근 광화문에서 이어질 집회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키즈버스 운영자는 "광화문 앞 도로는 버스를 세우기 어려워 영유아 및 부모를 지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winki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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