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황금주와 경주 신라주
연합뉴스
입력 2024-12-19 14:30:40 수정 2024-12-19 14:30:40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경주 통일전에 있는 태종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 영정

삼국통일의 주역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은 모두 술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황금주와 신라주를 개발한 이진환씨

삼국유사 태종춘추공 편에 따르면 태종무열왕은 하루에 쌀 여섯 말과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는 대식가였다고 한다. 또, 김유신은 화랑 시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말 위에서 자기가 잠이 들었는데 말이 술집으로 향한 사실을 알고 말의 목을 쳤다는 내용이 설화에 나온다.

황금주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헌강왕 시절에 기와집 처마가 마주 붙어 이어져 있을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 헌강왕은 즉위 8년이 되던 해(882년) 반월성 월상루에 올라 서라벌을 내려다보니 처마가 붙어있는 기와집 지붕 모양이 마치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 모양을 닮았다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경주 신라주

삼국사기에는 태평성대를 맞은 서라벌 사람들이 들국화를 따서 술을 빚어 마시고 주야 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 빚은 술이 바로 황금주(黃金酒)다.


이처럼 당연히 신라에도 전통주가 있었다. 무열왕이 마셨고 김유신의 말이 가려 했던 술집에서 팔았던 신라 술 황금주는 어떤 술이었을까?


중국에서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이백과 두보는 '대이두'(大李杜)라 불린다. 당나라 말기에 '소이두'(小李杜)라 불리는 시의 대가로 두목(杜牧)과 함께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있다. 이상은의 시집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시 '공자'(公子)에서 신라주가 나온다. 그는 신라주에 대해 "신라주 한잔의 취기가 이른 새벽바람에 사라질까 두렵구나(一盞新羅酒 凌晨恐易消, 일잔신라주 능신공이소)"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순조 때 출간된 '해동역사'(海東繹史)는 한치윤과 그의 조카 한진서가 20여년간 모은 자료를 집대성한 역사책이다. 해동역사 제26권 '물산지'(物産志)에는 이상은의 시와 함께 언급된 신라주가 고려시대 멥쌀로 만든 고려주와 같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신라술이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고 중국인들도 신라주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신라주는 중국의 황주와 비슷한 발효주에 알코올 도수도 비슷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경주의 이진완씨는 옛 문헌을 토대로 향이 독특한 신라 명주 생산을 위해 연구를 해오다 맛과 향이 1천년 전과 비슷한 경주 신라주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진완씨는 1987년 ㈜신라개발 상무로 일하면서 알코올도수 14도의 '황금주'를 만들었다. 신라주의 전신인 황금주는 침전주였다. 원료를 발효시킨 뒤 여과해서 추출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황금주는 1990년에 이강주·칠선주 등과 함께 국세청의 전통 민속주로 등록했지만, 민속주 기준인 '20년 이상 생산'에 미달한 데다 사업주의 부도로 맥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후 이씨는 1995년에 전통주 생산 허가를 다시 받았고, 1998년 신라주를 개발했다. 황금주에다 소줏고리 작업을 통해 한 수준 높인 증류주가 바로 신라주다.


당시 국세청이 5년간 전국 전통주의 시료를 분석해 우수 전통주를 선발했는데 경주 황금주가 1등을 했었고 그 부상으로 증류주 제조 허가를 추가로 받아 신라주를 복원했다고 한다.


이씨가 재현한 경주 신라주는 찹쌀과 일반 쌀, 구기자, 국화를 넣어 빚은 것으로 그 맛과 향이 독특한 알코올도수 30도 증류주다. 이씨는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시에 나오는 신라주를 빚어 신라 조상들의 정취를 되살렸으면 하는 소망으로 수년에 걸쳐 문헌과 자료수집을 통해 연구를 이어와 신라주를 재현하게 됐다.


2007년 '제11회 경북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경주 신라주는 경주의 문화재인 첨성대와 성덕대왕신종, 신라인 미소 등을 미니어처 술병으로 만든 관광기념품으로 상품성과 창의성이 돋보여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자식 중 신라주 빚는 것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 막내아들과 동갑내기인 한동환 씨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씨가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던 한씨는 고심 끝에 직업을 바꿨는데 전통주 시장의 상황은 여전히 어려웠다. 다행히 한씨의 노력으로 우체국 쇼핑과 각급 호텔 판매장, 국내선 국제선 공항 면세점과 군납 등 차츰 판매가 늘고 있다.


전통이라는 것은 지켜졌을 때 그 의미가 있다. 신라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라술 황금술과 경주 신라주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일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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