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한 손 크기의 연탄을 들자 '헉' 소리가 났다
연합뉴스
입력 2024-12-18 05:50:00 수정 2024-12-18 05:50:00
영등포 쪽방촌 연탄 배달 봉사…3.6㎏ 연탄 1천500장 날라
'새까만 연탄 산' 옮기며 팔에 통증…중3 학생들도 '나눔의 기쁨'


연탄을 꼭 쥔 손(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작업 전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비닐장갑 위에 목장갑을 겹쳐 끼고 그 위로 토시를 착용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그 위로 우비까지 입으니 가뜩이나 중무장한 몸이 더 무거워졌다.

기온은 영하 5도. 체감 기온은 더 낮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데 발이 꽁꽁 얼었다.

1분 정도 걸었을까. 새까만 연탄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2일 오전 9시 반 서울 영등포 쪽방촌. 다른 20여명과 함께 연탄 배달 봉사에 나섰다.

연탄 봉사를 하기 앞서(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봉사에 앞서 준비물을 챙기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봉사 동료'는 광성중학교 3학년 같은 반 학생들. 기말고사를 마친 이들은 이날 학교가 아닌 영등포 쪽방촌에서 모였다. 에너지 취약 가구에 연탄을 전달하기 위해 10대들이 뭉친 것이다.

연탄재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도록 어두운 옷을 받쳐 입은 A군은 "옷 버릴 각오로 왔다"고 말했다.

"(만화)'검정고무신'에서나 보던 거 아냐?"

연탄을 처음 보는 학생들은 연신 신기해했다. 괜히 연탄을 눌러보고 휴대전화로 사진도 찍었다.

연탄 1천500장과 자원봉사자들(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연탄 배달 봉사 설명을 듣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배달해야 하는 연탄은 총 1천500장. 방문 가구는 6곳이었다. 많이 듯하지만만 6가구가 한 달이면 다 써버리는 양이라고 한다.

한 손 크기의 연탄을 들자 '헉' 소리가 났다. 한 개의 무게는 3.6kg 정도. 생각보다 무겁고 재질이 물러서 놀랐다. 연탄 한개당 가격은 940원. 한 장 한 장이 주민들에게 소중한 난방 에너지기에 아기를 안듯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무겁지 않냐고 묻자 A군은 "매일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농구하는데 이 정도는 거뜬하다"며 웃었다.

연탄을 수레로 옮기는 자원봉사자들(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길이 좁은 쪽방촌에서는 수레로 연탄을 날랐는데 개수를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한 수레에 딱 연탄 100장씩 옮겨야 했다. 연탄을 4개씩 7줄, 3층으로 쌓고 그 위로 16장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연탄이 무너지지 않도록 몇 명이 달라붙어 수레를 끌었다. 연탄 100장을 실은 손수레는 무게가 제법 나가 도통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연탄이 가득한 수레를 끄는 자원봉사자들(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영등포 쪽방상담소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정운덕(28) 씨가 첫 번째 수레가 출발하기 전에 이렇게 당부했다.

쪽방촌 임시거주지 공사 차량이 드나들어 몇 번이고 수레를 멈춰야 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입은 저절로 벌어져 입김이 나오고 등엔 땀줄기가 흘렀다.

중학생들은 "얼른 봉사 끝내고 해장국 먹으러 가자"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서울=연합뉴스) 오인균(오른쪽) 인턴기자가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저 멀리 문 열린 보일러실이 보였다. 그 앞에 수레를 주차하고 5명이 일렬로 섰다.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20여 장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니 팔에 점점 통증이 왔다. 처음엔 농담을 주고받던 학생들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쌤(선생님), 허리 아파요."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나오자 잠시 쉬기로 했다. 주민들이 준비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였다. 학생들은 이런저런 동작을 하며 굳은 몸을 풀었다. 꿀맛 같은 쉬는 시간도 잠시. 다시 연탄을 수레로 옮기고 창고에 연탄 쌓기를 반복했다.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연탄을 옮겼다.

"99, 100장 다 됐습니다."

마지막 연탄을 전달하며 한 학생이 외쳤다. 비어있던 창고에 연탄이 가득 쌓인 모습을 보자 흐뭇해졌다. 봉사를 마친 학생들은 연탄재가 까맣게 묻은 얼굴을 보며 서로 낄낄거렸다.

학생들을 인솔한 조예은 교사는 '나눔의 기쁨'을 가르치기 위해 2021년부터 연탄 배달 봉사를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소셜미디어(SNS)에 연탄 봉사 사진을 올리면서 뿌듯해했다"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 연탄 창고에 붙은 달방 광고(서울=연합뉴스) 지난 12일 영등포 쪽방촌 연탄 창고에 '달방 있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2024.12.18 [촬영 오인균]

영등포 쪽방상담소에 따르면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연탄 봉사가 진행된다. 기업이나 종교 단체, 팬클럽 등에서 연탄을 후원하고 봉사를 신청하면 한 번에 3천 개에서 5천 개씩 연탄을 배분한다. 현재 영등포 쪽방촌 400여 가구 중 70%가 연탄을 사용한다.

사회복지사 정씨는 "다행히 연탄이 부족하거나 봉사자 모집이 어렵진 않다"며 "장갑, 앞치마, 우비를 제공해서 봉사자들이 최대한 편하게 연탄을 배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랑의연탄나눔운동 관계자는 "서울의 각 구청에서 연탄이 필요한 가구 명단을 받고 있는데 매년 10~15% 정도 감소하는 추세"라면서도 "연탄 때는 가구가 줄어드는 건 맞지만 서울에서도 여전히 연탄 배달 봉사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ku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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