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먼 산의 기억' 출간…"대통령에 화내는 한국인들 존경"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일기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되고, 자신과 말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계속 쓰다 보면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72)이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그림일기를 집약한 에세이 '먼 산의 기억'을 펴냈다. 작가가 여행 도중 겪은 일, 글을 쓰는 과정, 고국 튀르키예에 대한 생각 등을 자유롭게 담았다.
파묵은 16일 책 출간을 기념한 서면 인터뷰에서 내밀한 기록인 일기를 책으로 펴낸 것을 두고 "이 책을 출판할 때 주저하는 순간이 많았고, 지금도 가끔 후회한다"며 "왜 이런 것을 출판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망설임과 후회에도 파묵은 일기나 회고록을 공개했던 옛 작가들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일기는 잡지에 실렸는데, 이것은 위대한 발견이었다"며 "과거 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 자크 루소는 '고백록'이라는 회고록을 썼는데, 모든 것을 얼마나 솔직하게 써 놓았는지 '아, 이 사람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90년 전부터 작가들이 생전에 자신이 쓴 일기들을 출판하고 있고, 저 역시 일기장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이러한 발걸음에 작은 기여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탄생한 '먼 산의 기억'은 모든 페이지에 그림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던 파묵은 2009년부터 매일 한 면 이상 일기장에 글과 그림을 기록해왔다.
책에 실린 그림은 작업실이나 먼 산, 세계 곳곳의 풍경 등을 옮긴 것으로, 대부분 글의 내용과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읽힌다.
파묵은 "그림들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지 글을 장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글과 그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파묵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과 공통점이 있다. 튀르키예 최초의 수상자라는 점, 54세의 나이로 이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다.
파묵은 "한강 작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며 "'채식주의자'를 읽었고, 터키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을 구입했으며 곧 읽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파묵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 작가로서 어떤 큰 의미를 갖진 않고 단지 "약간의 책임감"을 느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제 책을 읽지도 않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자체로만 제게 관심을 보일 때가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노벨문학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처럼 파묵은 수상 이후로도 전과 마찬가지로 집필에 매진해 꾸준히 소설을 펴냈다.
'순수 박물관'은 수상 당시 집필하고 있던 작품이고, 이후 '내 마음의 낯섦', '고요한 집', '페스트의 밤' 등을 썼다. 이 가운데 '내 마음의 낯섦'은 작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책 가운데 하나다.
파묵은 정치적인 소신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에 비판적인 성명을 내 화제가 됐고, 이런 행보 때문에 극우파의 살해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저도 두려울 때가 있다"며 "튀르키예 대통령이 많은 작가를 감옥에 넣었는데, 아마도 노벨문학상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도 같다"고 털어놨다.
파묵은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의견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일기를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국민의 75%가 대통령에게 화를 내고 있다"며 "아마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상황도 일기에 적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인 75%의 바람에 존경을 표합니다.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를 바랍니다."
민음사. 이난아 옮김.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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