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영국서 사라진 브렉시트…"아무도 입에 안 올려"
연합뉴스
입력 2024-06-16 19:09:37 수정 2024-06-16 19:58:50
브렉시트 투표 '원죄' 보수당, EU 재가입 여론 높아지자 언급 꺼려
'EU 잔류' 지지했던 노동당, 브렉시트 찬성 유권자 끌어오려 회피
가자전쟁으로 전통적 노동당 지지층 무슬림 유권자 이탈도


영국 브렉시트 (PG)[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지난 10년간 영국 정치권의 주요 이슈였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내달 4일 조기총선을 앞두고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후회하고 재가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집권 보수당은 물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제1야당 노동당 역시 브렉시트를 언급하기를 꺼리는 모습이다.

AFP통신은 16일(현지시간) 이런 상황을 두고 브렉시트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유독성 이슈"가 됐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최근 분석 기사에서 "오랜 기간 영국 정치의 결정적 쟁점이었던 브렉시트가 이번 선거운동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브렉시트는 2013년 1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가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이래 영국을 크게 뒤흔든 주제였다.

지난 2019년 총선 때만 해도 브렉시트는 최대 이슈였다. 당시 총리였던 보리스 존슨은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를 내걸고 보수당의 대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정국에서는 주요 정치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고 있다.

AFP와 가디언 등 외신들은 영국 사회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후회하고 재가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을 일차적 원인으로 꼽았다.

영국은 2016년 6월 실시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전체의 52%인 1천740만명이 EU 탈퇴, 48%는 EU 잔류에 표를 던져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2020년 1월 31일 EU와 공식 결별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브렉시트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보는 영국인들이 많다.

지난해 7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2천151명을 상대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브렉시트가 실패였다는 응답 비율이 63%에 달했지만, 성공적이었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또 EU 재가입에 찬성하는 비율이 51%였고 반대 여론은 32%에 그쳤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이끈 '원죄'가 있는 보수당 입장에서는 당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수당은 EU 탈퇴를 지지하는 측에서도 브렉시트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브렉시트 전문가인 크리스 그레이 로열홀로웨이 런던대학교 교수는 "보수당으로서는 그것(브렉시트)을 언급해서 얻을 게 없다"고 말했다.

조기 총선 계획 발표하는 英 총리(런던 신화=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조기 총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수낵 총리는 총선이 7월 4일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2024.05.23 passion@yna.co.kr

노동당도 이 주제를 달가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EU 잔류파였던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를 언급하기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고 부인할 정도로 관련 언급을 피해 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외신들은 노동당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경제나 보건 문제 대신 굳이 브렉시트를 쟁점화해 '긁어부스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노동당은 존슨 전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에서 '망한 거래'를 했다고 비판해왔지만 기본적으로는 현 상태를 유지하되 EU와의 관계를 더 긴밀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싱크탱크 '변화하는 유럽 속의 영국'(UKICE) 소장인 아난드 메논 킹스칼리지 런던대 교수는 노동당이 지지율에서 크게 앞선 상태에서 "무얼 하든 효과가 있는데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고 가디언에 말했다.

그는 또 "EU 잔류파, 브렉시트 반대파인 스타머가 관련 공격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있으며, 브렉시트 찬성 유권자들의 붙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당에) 깔린 불안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가자지구 전쟁을 계기로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무슬림 유권자들이 이탈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주목된다고 AFP가 보도했다.

지난 2019년 총선에서 영국 무슬림 유권자 5명 중 4명꼴로 노동당에 투표했을 정도로 무슬림 인구 사이에서 노동당 지지세는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스타머 대표가 가자전쟁의 무조건적인 휴전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무슬림 지지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전에 노동당에 투표했던 무슬림 유권자 5명 중 1명이 이번에는 표를 주지 않겠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세대 무슬림 유권자들의 이탈이 뚜렷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가자지구 전쟁 문제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바심 샤비르는 무슬림 가운데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는 기성세대는 여전히 노동당을 지지하지만 영국에서 태어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 벵골 지역 젊은 세대에서는 노동당에 투표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당은 무슬림 인구가 유권자의 20% 이상인 선거구 28곳 가운데 지지도 잠식이 우려되는 13곳에 활동가들을 파견해 선거운동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자택 나서는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EPA=연합뉴스 자료사진]

inishmor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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