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공의 떠난 응급실…머리 희끗한 교수가 "어디 불편하세요?"
연합뉴스
입력 2024-02-26 14:15:59 수정 2024-02-26 17:17:00
교수가 인턴·전공의 업무까지 도맡아…"20년 전 수련의로 돌아간 셈"
전공의 파업 한 달 넘어가면 응급실 의료 공백 불가피


전공의 대신 응급실 지키는 교수와 간호사들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가운데 26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를 대신해 교수와 간호사가 응급환자를 문진하고 있다. 2024.2.26 andphotodo@yna.co.kr

(의정부=연합뉴스) 심민규 기자 =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 제 손가락 보이세요? 들리세요?"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하며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간 지 일주일째인 26일 오전 9시께 경기 의정부시 금오동의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

2차 병원 응급실로 환자 이송한 구급대(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사직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26일 광주 광산구 한 2차 병원 응급실 앞에서 환자를 이송한 119구급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4.2.26 iso64@yna.co.kr

머리를 쥐어 잡고 소리를 지르는 고령 환자를 119구급대원들이 다급하게 데려오자 대기하던 간호사 3명이 서둘러 달라붙어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에게 산소마스크를 착용시키고 체온·호흡·맥박·혈압 등을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수가 나타났다.

그는 능숙하게 청진기를 들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빠르게 응급병실로 안내한 뒤 응급실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이것저것 응급 검사 지시를 했다.

간호사들은 교수의 지시에 일사천리로 움직이며 응급환자들을 관리했다.

'트리아지(Triage·환자 분류소)'로 불리는 이 곳은 병원 관계자들이 환자와 보호자, 구급대원을 맞이한 뒤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곳이다.

평소 같으면 젊은 인턴이나 전공의들이 대기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전임의와 교수에게 알린 뒤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자리를 비운 뒤 트리아지를 지키는 일은 고스란히 전임의와 교수의 몫이 됐다.

전임의와 교수가 접수부터 진단까지 모든 과정에 투입되면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응급의학과 교수가 20년 전으로 돌아가 수련의 과정 업무를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전공의 대신 응급실 지키는 교수와 간호사들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난 가운데 26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를 대신해 교수와 간호사가 응급환자를 문진하고 있다. 2024.2.26 andphotodo@yna.co.kr

이날 반백의 교수가 맞이한 고령의 환자는 평소 심장병을 앓고 있었으며 이날 오전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자 119를 불러 응급실에 찾아왔다.

환자 보호자는 "아버지가 갑자기 가슴이 꽉 쪼인다며 고통을 호소해 놀라 119에 전화했다"며 "동두천에도 큰 병원이 있지만 병원 측에서 구급대원에게 진료가 어렵다고 해 핸들을 돌려 의정부까지 왔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소방 당국도 응급실 '전화 뺑뺑이'를 돌리는 등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다.

한 구급대원은 "중증 환자가 아니면 평소엔 (전화하지 않고) 그냥 응급실에 방문하지만, 요즘은 꼭 전화해 진료 가능 여부를 파악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이 병원에선 전공의 67명 중 52명(77.6%)이 사직서를 냈고 대부분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턴과 전공의들의 사직과 근무지 이탈로 그들의 업무를 도맡고 있는 전임의와 교수, 간호사들은 4조 3교대로 하루 8시간씩 근무하며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병원은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비해 수술 일정을 미리 조정하고 전문의와 간호사 등 가용 의료인력을 추가 배치해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때아닌 '땜방' 근무를 하게 된 교수들의 피로도도 점점 쌓여 가고 있다.

응급실에서 나이 지긋한 교수들을 맞닥뜨리는 구급대원들은 "교수들이 전공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들의 피곤함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전했다.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고 전임의마저 병원을 떠나게 된다면 의료 현장에 남아 있는 의료진의 업무는 과중될 수 밖에 없어 의료공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병원 관계자는 "다행히 아직까진 전임의들의 움직임은 없는 상태"라며 "전공의 파업이 한 달을 넘기면 교수와 간호사 등 피로도가 쌓여 의료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wildboa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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