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英여왕에 대한 홍콩인의 추모는 저항의 몸짓이었나
연합뉴스
입력 2022-09-24 07:07:01 수정 2022-09-24 07:07:01


홍콩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추모 헌화[촬영 윤고은] 지난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객들이 놓고 간 꽃들. 2022.9.24.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1919년 3월 일제강점기 고종의 국장(國葬)은 3·1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국왕의 붕어를 슬퍼하는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이면서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2022년 9월 홍콩에서는 7일간 1만3천여명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문록에 서명했다.

조문록을 마련한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도 깜짝 놀란 규모다.

사람들은 36도에 달하는 기록적 9월의 폭염 속에서 길게는 4시간 넘게 줄을 섰다.

영국 총영사관 앞에 꽃과 편지, 사진 등을 놓고 간 사람도 부지기수고 울음을 터뜨린 이들도 있었다.

온라인에서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굿바이, 시 타오 포어'.

홍콩인들은 엘리자베스 2세를 '시 타오 포어(事頭婆)'라고 부른다. '보스 레이디'(Boss Lady)라는 뜻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거느렸던 많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홍콩에서만 펼쳐졌다.

영연방 소속 많은 나라가 장례식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며 여왕을 애도했지만, 홍콩과 같은 열띤 조문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콩은 15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독립운동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홍콩인들은 왜 옛 식민지 군주의 죽음을 이토록 애도한 것일까.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여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추모객들. 2022.9.24.

100년 전 고종의 장례식은 일제에 탄압받던 조선 사람들이 국왕 추모라는 명분 아래 모일 기회를 제공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는 2020년 6월 국가보안법 시행 후 홍콩에서 금지된 집회를 처음으로 가능하게 한 모양새다.

코로나19 방역 규정으로 4인 이상 집회 금지가 시행 중인 홍콩에서 영국 여왕에 대한 조문은 사람들이 모일 명분을 만들어줬다.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일각에서는 식민지 시절에 대한 어떠한 찬양도 국가 전복이나 외국 세력과의 결탁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친중 매체들이 조문 행렬에 대해 식민지 시절을 미화한다고 비판했고,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조문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마뜩잖은 심기를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진행되던 시간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인 조문객들. 2022.9.24.

홍콩의 여왕 조문 열기에 대해 과거를 낭만화하는 향수와 현실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실제로 기자가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만난 홍콩인들은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은 번영했고 사람들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30대 셰릴 씨는 "홍콩인들은 영국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정말로 엘리자베스 2세를 좋아한다"며 "여왕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조문 열기는 예상했던 대로고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1967년 대규모 유혈 반영(反英) 폭동이 일어나는 등 영국의 홍콩 통치 기간이 모두 장밋빛은 아니었다.

인종차별이 자행됐고, 식민지 정부는 선동죄를 만들어 정치적 반대파들에 관용을 보이지 않았다.

홍콩인들이 기억하는 '좋았던 식민지 시절'은 반영 폭동 이후 영국이 태도 변화를 보이면서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마지막 20여 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인들은 2019년 반정부 시위를 정부가 강경 진압하고 이듬해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정치·사회·교육계에서 반대파의 목소리가 제거되고 많은 민주 진영 인사들이 투옥됐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대거 이민 행렬에 동참하면서 홍콩의 앞날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졌다고 지적한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뒤에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믿음 속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 구분 지으며 홍콩의 미래에 희망을 품었던 많은 이들은 2019년 시위 이후 빠르게 진행되는 '홍콩의 중국화'에 경악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최소한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있었고 번영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은 그러한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홍콩에 고하는 듯하다며 슬퍼한다.

홍콩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추모 행렬[촬영 윤고은] 지난 13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객들과 그들이 놓고 간 꽃들. 2022.9.24.

에밀리 라우 전 홍콩 민주당 주석은 "조문객 중에는 순수하게 여왕에 대한 추모의 감정과 향수를 가진 이도 있지만 현재 홍콩의 상황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이들도 있다"며 "이러한 조문 행사를 그러한 감정 표출의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콩 경찰은 여왕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19일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한 시민을 선동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하모니카로 '글로리 투 홍콩'과 영국 국가 등을 연주했다. '홍콩에 영광을'이라는 뜻의 '글로리 투 홍콩'은 2019년 반정부 시위 당시 울려 퍼졌던 노래다.

영국 여왕에 대한 그의 추모는 저항의 몸짓이었나.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열리던 시각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촛불을 들어 올린 조문객들. 202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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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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