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미지엔 없는 사물의 본질을 살피다…구본창 기획 사진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표면적 아름다움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사물 본질의 아름다움을 찾는 작가들을 모아봤습니다. 단순한 일상의 사물에서 숨겨진 서사와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작가 구본창)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 구본창(73)과 그가 초대한 8명 작가의 정물 사진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진동하는 사물들'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9일 시작했다.
구본창과 구성연(56)·김경태(43)·김수강(56)·박찬우(63)·정정호(45)·정희승(52)·조성연(55)·조선희(55)는 과도한 디지털 후보정이나 인공지능(AI) 기반의 이미지 생성·교정을 거치지 않은 정물 작업을 선보인다.

구본창은 이번 전시에서 '오브제' 연작을 선보인다. 새틴 천 안감의 빈 상자들을 촬영한 작품이다. 내용물이 빠져나간 자리를 음각으로 간직한 상자들은 부재로 존재를 드러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구본창은 "빈 상자로 있었던 것과 사라진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수강의 작품은 돌, 병, 종이 가방 등 주변에 무심히 존재하는 대상들을 화면에 구현했다.
그는 종이에 물감을 넣은 용액을 바르고 빛을 쬐어 물속에서 현상하는 '검프린트'(gum print) 기법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사진은 회화 같은 물성을 얻게 된다.
김수강은 "대상이 특별한 표정을 보이면 작업을 시작한다"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랫동안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정물 사진 작업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경태는 너트를 아주 크게 정밀하게 찍은 '브라스 핵스 너트' 연작을 선보였다.
그는 너트를 아주 가까이서 수백장을 찍은 뒤 각 사진에서 초점이 가장 선명하게 맞는 부분들만 합성하는 '포커스 스태킹' 기법을 사용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화면의 모든 지점에 고르게 초점이 맞아 아주 선명한 이미지를 뽑아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너트 표면의 무늬와 상처 등 가까이 있지만 평소에는 보기 힘든 세밀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희는 소멸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내놨다. '플래닛' 연작은 썩어가며 형태를 잃어가는 과일들을 촬영한 작업이다. 과일은 행성으로, 검은 배경은 우주로 보인다. 생의 기능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물질의 상태를 조명하며 죽음을 또 다른 미학적 상태로 바라본다.
연예인 인물 사진으로 유명한 조선희는 "과일을 얼굴이라 생각하고 인물화를 찍을 때처럼 눈높이에서 촬영했다"며 "오브제들을 객체이자 나 같은 주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주사위 던지기'를 사진으로 표현한 정희승 작가의 연작 '병렬투영', 조선 시대 '책거리' 형식을 차용한 작품을 선보인 박찬우 작가의 작업, 설탕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장식품들을 찍은 구성연 작가의 '설탕' 연작, 한국전쟁 당시 노무자였던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정정호 작가의 작품, 채집한 콘크리트 조각, 철근, 전선 등을 재조합해 촬영한 조성연 작가의 연작들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구본창은 "AI로 만든 이미지와 사진 작품이 잘 구분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진에는 일회성 AI 이미지에는 없는 많은 시간과 사유가 녹아있다. 사진은 공예와 같은 매체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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