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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주의 없는 복지] ① 여전한 데이터시차와 장벽…"구조개혁 필요"

연합뉴스입력
정부, 아동수당 등 자동지급 전환…직권신청 확대 추진
복지 사각지대 (PG)[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 편집자 주 =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가 증가하는 가운데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공급자 중심 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소득이 줄었는데도 정보 반영 시차로 건강보험료 부담이 커지거나, 지원 대상임에도 신청하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복지안전매트 강화 방안'을 통해 일부 복지급여 자동 지급과 위기가구 직권 신청 확대 등 신청주의 개선에 나섰습니다. 연합뉴스는 데이터 기반 복지 행정의 과제와 복지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3편의 기획 기사로 살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신청주의, 이거 매우 잔인한 제도 아닌가요? 대상자가 되면 국가가 당연히 지급하고, 최선을 다해 찾아냈음에도 못 받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신청 안 했다고 안 줘서 지원을 못 받아 죽음에 이르는 비극은 없어야 합니다."

지난 2025년 8월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 현장. 정책 보고를 받던 이재명 대통령의 이 같은 일갈은 대한민국 복지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직격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적한 문제의 핵심은 명확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건까지 우리 사회를 통탄하게 했던 비극의 중심에는 항상 '국민이 직접 알아보고 가난을 증명하며 신청해야만 도와준다'는 공급자 중심의 낡은 행정, 즉 '잔인한 신청주의(사회보장기본법 제11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위기가구 지원을 위한 복지안전매트 강화 방안'을 보고하며 행정의 패러다임을 '수동적 복지'에서 선제적인 '적극적 복지'로 전환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국가가 이미 데이터를 쥐고 있는데도 국민에게 입증책임을 떠넘기던 소극 행정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 '방 안의 코끼리'가 된 데이터 시차와 부처 간 장벽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방 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와 같은 육중한 비효율이 버티고 있다. 그 핵심은 소득이 발생한 시점과 보험료가 부과되는 시점 사이의 치명적인 간극, 즉 '데이터의 시차'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 지역가입자가 현재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는 사실 최장 2년 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갑작스러운 경기 불황으로 당장 이번 달 소득이 반토막 나더라도 행정 시스템상의 정보는 여전히 '호황기'에 머물러 있는 모순이 발생한다. 지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건강보험료 기준 선정 방식을 두고 민원이 폭주하며 현장이 대혼란에 빠졌던 이유도 바로 이 뒤처진 데이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 부처 간의 데이터 장벽도 사각지대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산업부의 에너지바우처나 농식품부의 농식품바우처는 취약계층을 위한 훌륭한 복지제도인데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로부터 수급자 자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지 못해 개별 부처가 따로 홍보하고 신청받는 비효율을 겪어왔다. 기술적으로는 데이터를 연계해 찾아서 지원할 수 있지만 부처 간 칸막이와 법적 근거 부재로 인해 신청률과 수급률이 동반 저하되는 불용액이 발생하는 셈이다.

◇ 정부의 즉각적 카드, 보편급여 '자동 지급'과 위기 상황 '직권 신청'

보건복지부가 이번에 내놓은 '복지안전매트' 대책은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카드들을 담고 있다. 정부는 우선 자격 확인이 즉시 가능한 보편급여인 아동수당, 부모급여, 첫만남이용권에 대해 '신청 없이 자동 지급' 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출생신고와 별개로 급여를 신청해야만 했으나, 앞으로는 출생신고만 하면 수급권이 자동으로 발생해 지급된다.

선별급여의 진입 장벽도 낮춘다. 기초생활수급 생계·의료급여를 받는 중증장애인이 65세가 되면 별도 신청 없이도 기초연금 수급 자격을 확인해 지급하는 등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신청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특히 현장 공무원이 위기가구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동의 없는 직권 신청의 실효성을 높였다. 미성년자와 발달장애인이 포함된 가구가 뚜렷한 이유 없이 신청을 거부하는 위기 상황일 경우 담당 공무원이 동의 없이 직권으로 신청해 생계급여를 선제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추후 금융재산 조사 결과, 과다 지급으로 밝혀지더라도 적극 행정 면책을 적용해 공무원의 환수 책임을 면제하는 면책 규정도 마련됐다.

◇ 개헌과 3대 분야 데이터 칸막이 철폐라는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연구위원은 이번 복지부의 대책을 "신청주의 개선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궁극적인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직역이나 근로시간이 아닌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RTI)'를 기반으로 완전히 소득 중심의 사회보험으로 개편하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이미 준비돼 있다는 설명이다.

최 위원은 향후 국회에서 헌법 개정이 재추진될 때 현행 선언적 규정인 헌법 제34조를 개정해 "국민이 신청하지 않더라도 국가와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지원 대상을 확인·조사해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구체적 책무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공공부문 내부는 물론, 민간 회색지대에 있는 '금융'과 '통신' 분야의 데이터 칸막이까지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데이터 장벽이 완벽히 무너질 때, AI 에이전트 기술이 국민의 권리를 먼저 찾고 일선 복지공무원들은 서류 검토가 아닌 현장에서 '통합돌봄' 등 인간 중심의 적극적 복지 전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복지안전매트'를 딛고, 대한민국이 이제 '신청주의의 완전한 종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sh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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