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사망] 최고지도자 잃은 이란 신정체제 운명은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권력의 정점인 최고지도자를 순식간에 잃어버린 이란 신정체제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권력 서열 1위라는 실질적, 정치적 의미뿐 아니라 1979년 수립된 이슬람 신정체제의 모태이자 근간인 이슬람혁명 정신의 총아라는 점에서 단순한 지도자의 사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신의 대리인' 격인 최고지도자가 종교·정치 권력의 정점에서 통치하는 이슬람공화국이라는 독특한 체제 전체의 존폐가 위협받게 됐다는 뜻이다.
특히 이같은 변화가 이란 내부의 자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이란 신정체제 교체를 '숙원'이었던 미국과 이스라엘의 외력에 의한 것이어서 불확실성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일단 최고지도자의 유고 시 권한 대행을 규정한 헌법 111조에 따라 대통령, 사법부 수장,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1명으로 구성된 3인이 지도자위원회가 1일(현지시간) 구성됐다.
하지만 37년간 통치한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생긴 진공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순조롭게 메워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이 권력 공백이 자연사나 퇴임과 같은 내부적 원인이 아니라 외부의 공격에 의한 암살이 원인인 만큼 권력 이양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예측할 수 없다.
기득권을 대체할 정치·이념적 야권 진영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큰 상황을 고려하면 권좌에 가장 가까운 세력은 혁명수비대를 위시한 군부로 보인다.
군부는 올해 초 반정부시위 때 시민들을 향해 주저없이 발포하며 체제 수호를 실질적으로 책임졌다. 지난해 6월에 이어 총사령관을 비롯해 혁명수비대 지휘부가 사망했고 후임자를 임명할 최고지도자도 암살돼 조직의 안정이 어느정도 신속히 될지는 미지수다.
미국,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도 향후 군부의 권력 장악 여부가 달렸다. 군부가 와해할 정도의 강력하고 장기적인 군사작전이라면 이란의 앞날은 예측불허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국방, 안보 분야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알리 라리지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모하마드 모흐베르 특보 등 하메네이 측근 진영과 혁명수비대 핵심부의 관계 역시 향후 이란 권력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세력이 차기 최고지도자를 원만하게 선출해 기존 이슬람공화국 체제 유지에 협력할지, 권좌를 놓고 경쟁하면서 전혀 다른 통치 체제로 이어질 지에 따라 이란의 앞날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란은 선제공격을 받고 우왕좌왕해 체제의 허점을 노출한 지난해 6월 '12일 전쟁'과 달리 이번엔 1시간여 만에 즉각, 그리고 중동 내 14곳의 미군 기지를 동시다발로 반격했다.
반정부시위와 같은 위기 속에서도 지난 8개월간 이란 지도부는 재정비를 통해 집중력을 발휘해 어느정도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웃 중동국가 모두를 공격하면서 지정학적으로 전방위적 압박을 받게 된 것은 이란의 체제 유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일 전쟁에서 걸프 국가들은 미국에 자제를 요청했었지만 자국이 직접 공격받게 되면서 이란의 현상 유지보다는 미국의 이란 정권 교체에 협력할 공산이 커졌다.
가자지구 전쟁 과정에서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이라크, 예멘의 친이란 무장조직이 거의 붕괴 또는 약화됐다는 점도 이란 체제의 '유효기간 만료'를 가속할 수 있다.

외교적 지형도 이란에는 희망적이지 않다.
동맹 러시아와 중국은 이날 자제를 호소했을 뿐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
이란도 러시아, 중국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작 이들 국가가 이란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조짐은 없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며 중국은 그간 제재로 판로가 막힌 이란산 원유를 값싸게 사들이며 경제적으로 협력했지만 안보 측면에서는 이란 관련 사안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란 국민의 자생적인 민주화나 왕정복고도 현재로선 현실성이 낮은 시나리오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김혁 한국외국어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1일 "이란 국민 다수가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열망하고 있으나 제도적 공백과 외부의 지원 부재로 민주주의 체제가 내부에서 뿌리내리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팔레비 왕정복고 역시 이란 내 지지 기반이 취약해 현실성이 낮다"며 "혼란한 전환기에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혁명수비대 내 진보세력이 이념적으론 억압적이지만 경제·사회적으로 유연성을 수용하는 시나리오도 예측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느 세력이 권력을 차지하더라도 미국의 이라크식 점령이 아닌 이상 당분간은 미국에 대해 강경한 정책, 최고지도자에 대한 추모를 구심점으로 내부 결속을 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국 국무부에서 이라크·이란 담당 업무를 했던 제니퍼 가비토는 이날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펴낸 보고서에서 "이란의 초기 대응은 이번 사태를 존립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당분간은 긴장 완화 조치가 고려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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