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같은 트럼프에…"러, 美에 세계곳곳 이익 빼앗길 위험"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이 나라는 유럽 선거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나라는 기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며 정치적 반대자들을 기소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요즘 다른 나라의 땅을 탈취하려고 하고 있다. 이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다. 미국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이렇게 시작하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있어 푸틴의 새 경쟁자는 트럼프"라는 뉴스 분석 기사에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 아래의 미국이 마치 러시아처럼 행동한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에 집중해온 폴 손 기자가 쓴 이 분석기사에서 NYT는 미국과 유럽을 갈라놓은 트럼프의 행보를 러시아가 무척 반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러시아가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전했다.
트럼프 집권 1기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러시아와 유럽 업무를 담당했던 피오나 힐은 최근 상황이 러시아에는 기회이자 위험이라고 NYT에 말했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힘을 글로벌 문제에서 공격적으로 행사하고 군사상·정보상의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 지정학적 이득을 챙겨왔다.
미국 대통령이 마치 푸틴처럼 행동하는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기만 하면 푸틴에게 득이 되지만, 자칫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의 군사력·경제력이 러시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힐은 "미국은 '우리는 당신과 함께 할 것이며 당신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할 것'이라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면서 "푸틴에게 문제는 트럼프가 '푸틴보다 더한 푸틴 짓'을 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집권기 행보는 러시아에 매우 득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임기 초기에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폐쇄하고 미국 관영·공영 매체들을 폐쇄하고 유럽의 친(親)러시아 정당들을 지원했으며, 이는 러시아를 오래 괴롭혀온 미국의 정책들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작년 2월 28일 백악관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맹비난한 것도 푸틴에게는 기쁜 소식이었다.
러시아가 트럼프의 행보에서 느끼는 득의양양한 기쁨은 지난주에 전례없는 수준으로 고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수십년간 노력해온 바대로 유럽 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심각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그린란드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것은 분명히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 미국과 덴마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거들면서 덴마크의 그린란드 식민지배가 가혹했다고 비판하는 발언도 했다.
분석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득을 확보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신의 핵심 요구를 희생할 의향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 우크라이나 외 지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으로 러시아의 이익이 침해당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기에 백악관 NSC에서 대(對)러시아 정책을 총괄했던 토머스 그레이엄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모스크바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수십년간 노력해온 바대로 미국과 유럽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대서양 양안 동맹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구 곳곳에서 러시아의 이익이 걸린 장소들에 미국이 자체 군사력과 자체 경제력을 배치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로지 노골적 힘만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푸틴이 중국과 미국과 맞먹을 수 있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그린란드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서반구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을 모스크바의 세력권으로 넘겨줄 의사가 있다는 징조는 전혀 없다는 게 그레이엄의 지적이다.
그는 트럼프의 사고방식에서 세력권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기본적으로 방어할 수 있기만 하면 가능한 한 많이 챙기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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