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日다카이치 총리의 역사 인식 경계한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에 이어 '대만 지위 미정' 발언을 한 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 간의 일이라지만 동북아 역사에 대한 인식을 둘러싼 충돌 성격도 띠고 있어 '남의 일'로만 볼 수 없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7일 중의원(하원)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무력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26일에는'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언급하며 "대만의 법적 지위 등을 인정하거나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 9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일본의 태평양전쟁 책임을 청산하기 위해 일본과 맺었다. 일본은 강점한 한국과 대만, 쿠릴열도 등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공식적으로 국권을 회복했다.
하지만 중국은 승전국으로서 대만을 돌려받았고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에 대한 외국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도 서방 일부 국가가 중국과 소련을 배제하고 체결한 것이라며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중일 간 이런 인식차로 잠복했던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 중국은 '핵심 이익'을 건드린 중대 사안으로 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이긴 했지만 중국은 '명확한 입장 철회'를 고수하고 있어 양국 충돌 양상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 3일 일본 참의원에서 대만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자 다카이치 총리는 1972년 중일 수교 당시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공동성명에 입장 변화가 없다고 다소 완화된 답변을 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두둔할 일도 아니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역사 인식대로라면 독도 문제부터 걸린다는 점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한국 반환 도서를 열거한 부분에 독도는 빠져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할 때 이 점을 내세운다.
독도는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전 사료들에 한국의 영토임이 명시돼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적시된 3개의 섬 이외의 수많은 섬이 현재 한국 영토이기도 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독도 영유권 주장은 물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역사 문제에 대한 강경 보수 성향의 발언으로 일본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정치 지도자의 발언은 역사 인식과 다각적 포석이 깔려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최근 발언은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필요에 따라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중일 갈등 고조 시기인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내각 지지율은 75%로 고공행진을 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한국도 중일 갈등이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신중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미 파장을 미치고 있는 한중일 3국 협력 체제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지도 깊이있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이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보이콧하면서 연내 개최가 사실상 무산됐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이 주도해 만들어낸 정상급 대화채널이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이 절실한 시점이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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