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기업 발목잡기"·與 "불공정 해소"…상법 필리버스터 공방(종합)

(서울=연합뉴스) 오규진 김유아 기자 = 여야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 센' 상법 개정안을 두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공방을 벌였다.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을 '기업 옥죄기' 법안으로 규정하며 반대 토론에 나섰다.
첫 주자로 나선 곽규택 의원은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수갑과 족쇄를 채운 상태에서 금메달을 따오라고 할 수는 없다"며 "경영 혼란을 초래해 급속한 산업 패러다임 전환 대응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다수결의 원리를 훼손하고, 기업 자율성을 무력화시키며, 소수 투기자본이 부당하게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제도"라며 "우리가 가려는 방향은 미국과 일본이 갔다 실패를 선언하고 돌아선 길"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기업 수가 미국, 일본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로 많다"며 "상법이 추가로 개정될 경우 외부 세력의 경영권 공격이 급증하고, 기업 기밀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 도입과 더불어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 할 때"라며 "상법 개정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과 대안들에 대해 다시 숙의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상법 개정 찬성 토론에 나섰다.
오기형 의원은 "회사 경영진이 배후 조종하는 지배 주주 입장을 대변할 게 아니라 일반 주주 이익도 주주 평등의 원칙에 따라 일률적으로 반영해야 된다"며 "그렇게 가야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신뢰로 바뀐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에 대해 오 의원은 "상장회사라고 하면 일반 투자자가 있고, 1주 1의결권을 보장했다면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며 "(최대 주주가) '거수기 이사회만 가지고 하겠다'는 생각이라면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두고는 "경영권은 다수파가 잡고 있지만, 비판할 수 있고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을 1명이라도 더 넣어보자(는 취지)"라며 "대기업의 재무제표 또는 이익의 공유·분배 과정에서 불공정성이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의원은 "주식시장 선진화 로드맵을 사회적으로 합의한다면 일본 못지않게 한국의 자본시장은 성장할 것"이라며 "로드맵을 어떻게 채워나가고 풍부하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도 머리를 맞대고 안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3∼4번째 토론자로 나선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과 민주당 김남근 의원 역시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두고 정반대 주장을 폈다.
조 의원은 "1차 개정안이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았다. 기업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일부 대기업 때문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혁신 스타트업이 이 법으로 인해 더 많은 부담과 불확실성을 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의원은 "기관이 아닌 개인 투자자가 급증하는 등 시대의 변화도 고려한 것"이라면서 "3년 전보다 주식 투자자 수가 2배 정도 늘어난 만큼 주식시장이 재계 목소리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조 의원에 반박했다.
이날 필리버스터에는 12시간 동안 5명이 번갈아 가며 연단에 올랐다. 첫 주자로 나선 곽 의원이 2시간 38분, 오 의원 2시간 4분, 조 의원 3시간 14분, 김 의원은 2시간 49분 동안 발언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다섯번째로 넘겨받은 이날 토론은 자정을 넘겨 이어지겠지만, 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종결을 요구함에 따라 첫 토론이 개시된 지 24시간이 지난 25일 오전 9시42분께 표결을 거쳐 종결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의원 발언 중 주무 장관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자리를 비우자 "법안에 대한 토론이 진행 중인데 자리에 없다는 건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시정해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양해를 구하고 식사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말했다가, 항의가 그치지 않자 "양당 교섭단체가 합의해서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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