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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김수미의 'K-씨어터'…평범의 가치 선보인 최원종 연출-①

연합뉴스입력
연출가 최원종본인 제공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연극 '세기의 사나이'사진 : 극단 명작옥수수밭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사진 : 극단 명작옥수수밭
좋은 연극인과 그들이 만드는 훌륭한 작품은 늘 차고 넘친다. 필자가 작품을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설 때면 시간의 모자람에 대한 애달픔이 앞섰다.
연극 '에어로빅 보이즈'사진 : 극단 명작옥수수밭
그리하여 이토록 좋은 우리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를 논하는 '연출열전'(演出列傳)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최원종(50) 연출이다. 올해, 이 극단이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단원 30여 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연극 '세기의 사나이'가 무대에 올랐고, 명작옥수수밭을 거쳐 간 손병호, 남명렬, 박완규, 염혜란, 박호산 등 많은 배우도 축하 영상을 보내왔다.

명작옥수수밭의 단원들은 지난 20년간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를 채우듯 성실하게 작품을 쌓아왔다. 땀과 시간으로 영글어진 작품은 극단 이름처럼 착실하게 '명작'이 돼갔다.

그 중심에 대표이자 극작 연출가인 최원종이 있다. 최원종은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돼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수의 희곡상과 문학상을 수상하며 풍부한 작품성과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명작옥수수밭에서 쓰고 연출한 작품 가운데 '헤비메탈 걸스'는 201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작품으로 선정됐고, 2015년의 '청춘, 간다'는 서울연극제에서 대상, 희곡상, 무대 디자인상, 남·여 신인연기상 등 6관왕을 차지하며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 "배우에 대한 존경은 신앙과 같아" 20여 년 전 최원종은 꽤 수줍음 많은 작가였다. 2002년 필자와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인터뷰할 때 진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순진한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도 그는 자주 수줍게 웃고, 무안할 때는 오른쪽 옆머리를 쥐고 헤집는 버릇이 있다. 무슨 말이든 진지하게 듣고, 천천히 생각하고, 쓸데없이 과한 표현이 없는 것도 여전하다. 그런데 눈빛은 더 또렷해졌고 말투는 더욱 담백해져서 훨씬 유쾌하게 느껴졌다. 연출가 최원종은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제 연극을 보시고 울었어요. 평범하게 자란 내 아들이 왜 이렇게 무겁고 슬픈 작품을 쓸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제 작품이 대부분 어둡고 파괴적이고 그로테스크했는데, 그때 심각하게 글 쓰는 일을 고민했죠. 마침 극단에 연출이 필요했는데, 그냥 제가 연출을 시작하게 된 거죠." 명작옥수수밭은 작가들이 모여서 2005년에 만든 극단이다. 초기 멤버는 차근호, 최원종, 이시원, 선욱현 작가였는데, 선욱현 작가가 새 극단을 만들어 나가면서 세 명이 남았다. 작가들은 해마다 꾸준히 작품을 썼지만, 이들의 작품이 왕성하게 공연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에 최원종이 본격적으로 연출에 나선 후였다. 연출을 권유한 이는 지금의 아내인 작가 이시원과 멘토였던 이만희 작가였다. "이만희 선생님과는 멘토 프로그램에서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자꾸 호텔에서 보자 하시는 거예요. 호텔 커피숍에서 만 오천 원짜리 커피 사주시고, 식당에서 비싸고 좋은 밥을 사주셨어요. 그러고는 별말씀도 없이 헤어지곤 했죠. 저는 그 교수법이 너무너무 좋더라고요(웃음). 신기한 것들도 알려주셨어요. 저 자리에서는 조정래가 작품을 썼다, 여기는 영화배우 누가 자주 온다, 그때 알았어요. 아, 유명한 작가들은 자기 집이나 조그만 커피숍에서 글을 쓰는 게 아니었구나." 호텔 커피숍에 앉아서 헐렁헐렁하게 멘토링 하는 나이 든 멘토와 그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듣고 끄덕이는 어린 멘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만히 웃음이 난다. 작가 이만희가 하는 무위(無爲)한 생각이나 행동이 최원종에게는 좀 더 힘을 빼고 연극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줬고, 새로운 연극의 나이테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짧은 인생인데, 오지도 않는 연출을 기다리지 말고 직접 해봐라. 어두운 작품을 잘 쓰니 분명히 코미디도 잘할 거야". 이만희 연출의 이런 격려 덕분에 연출을 시작할 때도 용기가 났다. 자의 반 타의 반 연출은 시작했는데, 연출의 세계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결정할 일은 너무 많고, 연습은 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배우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을 보내다가 상갓집에서 선배 연출가 이성열과 최용훈을 만났는데, 무릎을 꿇고 혜안을 구하니 중요한 비법을 전수해줬다. "첫째, 배우들과 술을 자주 마셔라. 둘째, 그들의 말에 토를 달지 마라. 셋째, 계산은 네가 꼭 해라." 그 후로 최원종은 불만 가득한 배우를 술집으로 끌고 갔고,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카드를 냈다. 신기하게 분위기가 좋아져서 조금씩 길도 보였다. 드디어 첫 번째 연출작 '에어로빅 보이즈'(2011)의 공연 첫날, 시간에 쫓기느라 최종 리허설도 못 해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불안해하는 연출가를 바라보면서 여러 배우가 말했다.

"우리를 한번 믿어봐."

공연 내내 객석에서 허리 한번 못 펴고 초조하게 앉아 있다가 터벅터벅 로비로 나왔는데 사방에서 축하와 격려가 쏟아졌다. 성공이었다. 그해 이 작품은 차세대연출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으로 선정됐고, 이듬해에는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작가 최원종은 그렇게 연출가가 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배우의 존엄을 몸과 마음으로 크게 경험했다.

지금까지도 최원종이 배우에게 갖는 존경심은 마치 신앙과도 같다. 이후 직접 쓰고 연출한 '헤비메탈 걸스'(창작산실 우수작품 선정), '청춘, 간다'(서울연극제 6관왕, 대상/희곡상/무대디자인상/남·여·신인연기상) 등은 극작 연출가 최원종의 실력을 당당하게 인정해 준 작품이다.

선연(線緣) 김수미. 연극 평론가

▲ 전 월간 '객석' 연극전문 기자. 현 중랑문화재단 문화정책사업팀장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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